복음 사색

도토리-상수리 나무

by 후박나무 posted Nov 01,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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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시절 영성신학 강의를 들을 때 유난히 거북살스럽고 납득할 수 없었던 것 중 하나는 초월적인 하느님을 강조하다보니 자연과 초자연을 나누고 전자를 경시하는 경향이었다. 토미즘의 원조인 토마스 아퀴나스는 ‘은총은 자연의 완성이다’ 했는데……. 쓸모없음의 쓸모 있음을 역설하고, 無爲自然을 중시하는 노장철학이 은연중 배어 있는 문화를 배경으로 자랐기에 더욱 그러했을 것 같다.

 

다행히 복음이 전하는 예수님은 그렇게 자연과 초자연을 나눈 것 같지 않다. 예수님의 하느님 나라 비유는 겨자씨, 누룩, 밭에 묻힌 보물, 혼인잔치등 늘 보는 일이라 그 신비를 잊고 지내던 일상의 신비나 자연의 신비를 일깨우는 이야기이다.

 

모든 聖人의 날에, 성인을 자연에 비추어 생각해본다. 성인이란 그에게 부여된 잠재력을 주어지는 환경과 최대한 창조적으로 조합하여 결과물을 낸 사람일 것 같다. 도토리가 내재된 게놈((독일어: genom, 영어: genome 지놈) 을 주어지는 햇빛, 물, 토양, 바람등과 관계하며 자신의 생명력으로 조직하여 거대한 상수리나무로 현실화 하듯 말이다. 그러나 한계령의 남설악에서 보듯이 소나무 씨앗은 냇가의 좋은 환경에 떨어질 수도 있지만 가끔은 높은 암봉의 바위틈새라는 척박한 환경에 떨어져 자라기도 한다.

 

이런 점을 고찰하면 오늘 진복팔단은 이렇게 들린다. 주어진 생명으로 주어지는 환경을 애써 조합하여 낳은 결과물이 세상의 기준엔 보잘 것 없이 보여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하느님은 달리 보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