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사색

고진감래(苦盡甘來)

by 후박나무 posted Nov 08,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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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를 하나의 건물에 비하면 히브리 성서(구약성서)는 기초와 기둥, 벽에 해당되고 크리스천 성서(신약성서)는 지붕이라고 한다. 하느님의 부르심, 성소에 관한 신약성서의 이야기는 구약성서의 소명사화라는 배경이 없다면 초라하고 무미건조할 것이다.

 

예레미야는 여러 예언자들 중에서도 부르심을 받고 그 길을 걷는 이들에게는 좋은 모델, 전범이 되어준다. 그 길을 걷는 한 인간으로서 매우 적나라하게 자신의 내면을 토로하기에 그러하다.

 

누군들 처음 부르심을 받고 청운의 뜻을 품고 떠나던 봄날이 없었겠는가! “말씀 내리시는 대로 저는 받아 삼켰습니다. 만군의 야훼 하느님, 이 몸을 주님의 것이라 불러주셨기에 주님의 말씀이 그렇게도 기쁘고 마음에 흐뭇하기만 하였습니다.”

 

봄은 그리 길지 않고 곧 어려움이 찾아든다. 하느님의 말씀은 꿀 송이처럼 단것만은 아니다. "아아, 어머니! 왜 나를 낳으셨습니까? 온 나라 사람이 다 나에게 시비를 걸고 싸움을 걸어옵니다. 나는 아무에게도 빚진 일이 없고 빚을 준 일도 없는데, 사람마다 이 몸을 저주합니다. “ 더 힘든 것은 역경 앞에서 하느님에 대한 신뢰마저 흔들리는 것이다. 이 괴로움은 왜 끝이 없습니까? 마음의 상처는 나을 것 같지 않습니다. 주께서는 물이 마르다가도 흐르고, 흐르다가도 마르는 도무지 믿을 수 없는 도랑같이 되셨습니다.”

 

87년 3개월간 미국수도원을 방문하면서 ‘오래된 미래’를 먼저 보았다. “예수를 따른” 결과를 미리 목격한 것이다. 그리고 절실하게 된 것이 ‘고난의 신비’를 체득하는 일이었다. 절망적인 현실을 진정 의미 있게, 새롭게 볼 수 있는 눈이 열리지 않는다면 체념 속에 사는 것이 될 테니…….요즈음은 고난의 신비를 통렌기도를 통해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