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사색

위령성월 마지막 날

by 후박나무 posted Nov 30,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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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이도 만나고 며칠 쉴 겸 양양에 오다. 한 달포쯤 전 삽존리에 왔을 때도 Michael Mott 가 쓴 토마스 머튼의 공식 전기를 찾았으나 못찾고 이번에도 애를 먹였다. 오늘 오전 1시 반쯤 한밤에 깨어 혼자 놀다가 잠깐 잠이 들어 꿈을 꾸었다. 꿈에서 본 그 책의 표지는 내가 기억하는 것과는 달리, 흰색과 주황색 바탕이 바래있었다. 미사 후 곧바로 도서관에 내려가 꿈에서 본 서가를 살펴보니 과연 색 바랜 표지의 그 책이 있었다. 다른 표지의 책을 찾았으니 안보일 수밖에... 정말 무의식은 알고 있다.

 

목석과는 달리 칠정으로 묶어지는 감정(기쁨, 노여움, 슬픔, 두려움, 사랑, 싫어함, 바람)을 갖기에 사람은 똑같은 시간의 흐름을 단위별로 나누고 매듭을 지어 오늘을 다른 날과 또 이 시간을 저 시간과 구별 짓는다. 그렇게 구별되는 오늘은 위령성월, 모든 것이 사라지는 것은 아닌 달의 마지막 날이다. 유한한 인간으로서 세월의 추이를 보며 느끼는 감흥은 주로 시간의 질적인 차원에서 온다. “나뭇잎 떨어져 바람인가 했더니 세월이더라” 여기서 세월이 뜻하는 바와 같이.

 

한국 언론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인물로 꼽히는 손석희씨는 실체적 진실에 더 가까이 나아간다는 의미로 ‘한 걸음 더 들어가서’ 라는 말을 즐겨 쓴다. 고고학에서 자주 ‘진실은 한 층(strata) 더 아래에 있다’ 는 의미와 같을 것이다. 변천하는 세상과 그 안에서의 삶이라는 큰 책을 사람들은 나름대로 한걸음 더 들어가 이해하려 애쓴다. 더러 깨달은 바는 ‘그 말도 이야기도 소리 없어도, 그 소리 땅 끝까지 번져가’ 다음 세대로 전승되고 후일 기록되기도 한다.

 

크리스천 성서(신약성서)는 히브리 성서가 설파한 야훼 하느님의 특성인 헤셑이 온전히 예수라는 한 역사적 인물에서 육화하여 실현되었다고 주장한다. 아파하는 사람과 같이 아파하고,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의 억울함을 자신의 억울함으로 느끼는 하느님, 그 하느님이 사람이 되어 산다면 예수처럼 살다가 그처럼 죽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를 따른 12 제자만 해도 참 각양각색이다. 사도 바오로는 말할 것도 없고. 그분을 보면 “로마를 3일 방문한 사람이 3년 산 사람보다 할 말이 더 많다”는 말이 실감난다. 그런 다름이 중구난방이 되지 않고 다양성이 되려면 중심은 헤셑 이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