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소지기

by mulgogi posted Dec 18,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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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숙 마리안나(광주 글방)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은 나를 공소지기라고 불렀다.

     사십대에 주님을 만나 장부와 함께 이곳에 나왔을 때는

     다섯 명의 신자들이 모여 공소예절을 하고 있었다.

     신부님은 두 달에 한 번, 석 달에 한 번씩 성사를 주고 미사를 해주셨다.

     그나마도 숫자가 적으니 공소 문을 닫고 본당으로 나오면 어떻겠느냐고 권유받던 공소가

     문을 닫을 위기에 처했을 때 주님은 우리 부부를 이곳에 불러 주셨다.


     공소는 우물도 사택도 없이 잡초만 무성한, 밭 가운데 덩그러니 낡은 성당 건물만 서 있었다.

     1958년에 설립된 공소는 밀가루 배급과 구호물자를 줄때는 신자수가 200명이 넘을 때도 있었다고 한다.

     천막 공소를 전전 하다가 본당 외국신부님 고향에서의 모금으로 현재의 공소 부지 400평,

     건평 50평의 공소 건물이 이곳에 세워졌다고 한다.


     직장 따라 이곳에 오게 되었는데 1년만 살다가 도시로 나가려 했던 것이

     이곳에 터를 잡고 산 지도 40년이 훌쩍 넘었다.

     지난날을 돌이켜 생각해 보니 하느님의 부르심이었고,

     그때부터 나는 공소를 일으키라는 소명을 받은 것 같다.

     그렇다고 특별하게 내세울 것도 자랑할 만한 것도 없는,

     잘하는 것 보다는 못하는 것이 더 많은 소심하고 용기도 없는,

     부족하기 짝이 없는 나를 주님은 부지런함과 선한 마음을 주셔서 공소지기로 세우셨다.

     나는 공소회장도 레지오 단장도 소공동체의 반장도 아니다.

     내가 하는 일은 평범한 일로 공소를 돌보고 살피는 일이다.

     사람이 살지 않는 이곳은 관리하는 사람이 없어 빈 집으로 있기에 확인,

     점검하지 않으면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기기 쉽다.

     그래서 나는 주일아침 일찍 나와 미사 준비물은 잘 준비되어 있는지 살펴보고,

     미사 후에는 전등불은 다 꺼졌는지, 창문과 문은 잠겼는지,

     보일러와 수도가 이상이 없는지 살펴보고 마지막으로 성당 문을 잠근 뒤 집으로 돌아간다.

 

     한때는 공소가 활성화되어 신바람 나는 시절이 있었다.

     30년 냉담한 교우도 이끌어 내고 예비신자도 늘어

     공소치고는 꽤 많은 60명이 넘는 신자들이 있을 때도 있었다.

     그런데 젊은 사람들은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떠나가고 점점 신자들도 고령화되어,

     근래 나오지 못한 신자가 10여명, 미사 참석 인원은 겨우 30~35명 정도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적은 인원이라도 신자 한 사람 한 사람이 소중하다.

     우리 공소는 레지오 한 팀과 소공동체 3팀이 있어

     한 달에 한 번씩 각 가정을 돌아가며 모여 복음 나누기와 친교를 통해 공동체를 이끌어 가고 있다.

     공소의 자랑거리로는 첫 번째 매년 11월 달이면 추수 감사 축제가 열린다.

     금년으로 23회가 되는데 그때 걷어진 곡물과 채소,

     과일들은 불우 이웃과 시설에 보내어 나눔을 꾸준하게 실천해 오고 있다.

     두 번째는 공소일지를 30년 넘게 써오고 있다.

     공소의 크고 작은 일들과 행사를 기록 해 두었다가 매년 연말 총회 때 신자들에게 알려준다.

     이렇게 해서 우리 공소의 역사가 기록이 되어 우리 후손들에게 물려주기 위해 열심히 적고 있다.

 

     나는 공소지기로서 소망이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가장 큰 희망으로 오래된 조립식 성당 대신 튼튼하고 아름다운 새 성전을 짓는데

     나의 공소지기 역할이 기초가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래서 논 700평을 성전 건립을 위해 내 놓기로 약속하고 기도하고 있다.

     내가 살아있는 동안 이루어졌으면 더 좋겠지만 아니더라도

     언젠가 이곳에 새 성전이 세워지리라는 것을 믿는다.

     또 하나는 우리 공소에도 선교사가 파견되어 복음을 널리 전파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꼭 소원이 이루어질 것이라 믿고 부족한 나를 공소지기로 불러주셔서

     봉사할 수 있게 해 주신 주님께 감사드린다.

     내 몸이 허락하는 한 공소지기로서 더 열심히 살겠다고 다짐하며 필립비서 4,13의 말씀을 되새겨 본다.

     “나에게 힘을 주시는 분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필리 4,13)

     (광주 대교구 임곡본당, 본양 공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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