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여름 기온이 되니 차례로 피던 꽃들이 한꺼번에 피어버렸다, 싱겁게! 수도원 정원과 산책로 주변의 산수유, 목련, 진달래, 개나리가 하루 새에 피었다. 웬만한 나무는 묵은 잎을 다 떨궈 裸木으로 새 나뭇잎을 준비하는데 유독 단풍나무는 지난해의 빛바래고 말라버린 잎에 무슨 애착이 그리도 많은지 여직도 덕지덕지 달고 있다. 작년 가을의 영광을 못 잊는지…….
철든 사람치고 고통이 낯선 사람은 없을 것 같다. 온갖 인연으로 때로는 누구 의 탓이랄 것도 없이 다가오는 고통이 낯설지 않다 고해서 평온한 마음으로 수용하는 것도 아니다. 젊어서는 죽음이 문제였는데 더 살아보니 사는 게 문제더라!
고통을 다루는 구약성서의 문헌 중에 그 최고봉은 이사야의 ‘야훼의 종’ 일 것 같다. 특히 넷째종의 노래는 세상의 죄를 없애는 혹은 고통을 해소하는 궁극적인 길을 제시한다. 내가 최선을 다해 해야 할 일은 그 대속적인 메시아의 죽음에 숟가락 하나 올려놓는 일, 혹시 가능하다면 그 대속적 죽음에 동참하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