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사색

서품 32주년

by 후박나무 posted Feb 21,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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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년 전 오늘 서울 명상의 집에서 강우일 베드로 주교님에게 사제서품을 받았다. 강 주교님으로서는 당신이 주교로 서품된 후 처음 주관하신 사제서품식이었다.

 

1987년 2월은 당사자인 나는 물론이고 성가대나 전례를 비롯해 여러 행정적인 일까지 준비해야 했던 선, 후배 형제들이 고생 꽤나 했다. 2월 5일 서울 명상의 집에서 마티아 수사와 나의 종신서원식이 있었고 한주일 남짓 후인 12일경에 광주 수도원에서 윤공희 대주교님 주례로 내 부제품, 그리곤 21일 서울에서 다시 사제품을 받았으니 3주 동안에 종신서원과 부제품, 사제품을 다 받은 것이다. 형제들의 고생도 고생이었고, 3주 동안에 3번이나 가장 낮은 자세로 땅에 엎드려 부복해야했던 당사자인 나의 긴장도 적정도를 넘겼었는지 4월에는 위내시경 결과 위천공이란 진단까지 받았었다.

 

그렇게 3주 동안에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종신서원, 부제품, 사제품을 받은 이유는 예수라는 분을 좀 더 공식적으로 따르려는 준비였다. 그럼 그분은 어떤 분이었을까?

 

제비도 새끼 두는 둥지가 있사옵고 여우도 굴이 있으나, 제게는 당신의 제단이 있나이다. 라는 시편을 인용하듯이 예수 그분은 무척 분주하게 사람들을 만나고 치유하며 가르치고 꾸짖던 길 위의 사목자였다. 이제껏 예언자의 영성과 신비가의 길을 서로 다른 것으로 간주하던 경향에서 벗어나 요즈음은 이 둘을 하나로 보기 시작한다. 말하자면 예수는 관상가 contemplative 이면서 동시에 신비가 Mystic 며 예언자이었다. 그리고 그 원천은 그가 아빠라 불렀던 하느님과의 밀접한 관계였다. 그 무상의 사랑을 체험하고 친밀한 유대를 가졌었기에 그는 신비가인 동시에 시대의 징표를 읽고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예언자일 수 있었다. 이점에 대해서는 참으로 연구하고 따라야 할 것이 많다. 제자들이 많이 있었지만 특별히 가깝게 지내는 그룹도 있었다.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 그리고 마리아 막달레나와의 친교를 보면 인간적인 면모를 잘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