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간 짙은 미세먼지가 하늘을 덮어 온통 세상의 종말과 같은 풍경을 연출했다. 환경이 그러니 몸도 마음도 덩달아 암울했다.
오늘 신명기에서 모세는 “보아라, 내가 오늘 너희 앞에 생명과 행복, 죽음과 불행을 내 놓는다.” 면서 생명을 선택하라고 권한다. 그러나 과연 인류는 어떤 것이 생명의 길 인줄 안다 하더라도, 그것을 선택할 능력이 있을까?
당장 눈앞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단지 몇 년후의 미래를 위해서 또는 다음세대를 위해 이제껏 몸에 익은 편리한 생활양식을 버리고 낯설고 불편한 삶을 감내할 수 있을까?
1991년 여름방학은 사하라 사막에서 기원하여 지중해를 거쳐 로마로 불어오는 시로코(Sirocco)를 피해 아일랜드의 더블린 수도원에서 지냈었다. 그때 독일 태생의 영국 경제학자인 E. F.슈마허(Schumacher)의 “작은 것이 아름답다”를 만났다. 이 책에서 그는 “적정수준의 기술”, “인간의 얼굴을 한 경제학” 등 인류가 살아남을 수 있는 생명의 길을 제시했지만 그린피스등 환경에 깊은 감수성을 가진 극소수를 제외하면 우리는 이제껏 죽음과 불행을 택한 셈이다. 지금 우리는 죽음을 선택한 대가를 겪고 있지만 앞으로도 이것이 인류 대다수의 생활양식을 변화시킬 것 같지는 않다. 메시아의 수난을 받아들이지 않고 저마다의 환상 속에 살았던 제자들처럼, 인류도 눈앞에 닥친 재앙을 부정하며 꿈을 꾸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