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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원 가브리엘 신부님의 묵상글입니다.
복음 사색

성. 토마스 기념성당

by 후박나무 posted Apr 28,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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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90년대 후반 즈음일 터……. 인도의 방갈로에서 회의를 마친 후 마 신부님이 사목하시는 남부의 코친에 들렀었다. 그때가 나로서는 3번째 인도 방문이었다. 뭐 흔히 하는 말로 인도를 한 번도 안 가본 사람은 있어도 한번만 가본 사람은 없다고. 그만큼 매력이 있어 다시 찾게 된다는 말이겠지만, 나에게는 그저 난센스에 지나지 않는다. 여하튼 코친에서 차로 몇 시간 가면 강변에 세워진 성. 토마스 기념성당에 갈 수 있다. 재미있는 건 그 성당에 특별한 Relic 이 있는데 토마스 사도의 손가락을 안장한 무덤이 있다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유럽인들에게도 별 해괴한 미신이 많다. 특히 성인들의 유해에 관해서는…….순례객들을 끌어들이는 커다란 요인이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티베트의 라마승들이 자신들의 전통적인 고유한 찬트를 유럽에 선 보인 적이 있다. 그것을 듣고는 무척 열광적인 반응을 보인 어느 유명한 롹밴드의 리더를 특별히 인터뷰 하게 되었다 한다. 음악적인 장르나 분위기가 너무도 다른데도 극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이 신기했었나 보다. 그 리더는 이런 답을 했다고 한다. 우리는 결국 동업자이다. 운수업이라는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라고. 사람을 이 상태에서 저 상태로 옮기는…….

 

진정한 종교나 예술의 궁극적인 목적은 사람의 영혼을 고양시켜 다른 세상을 볼 수 있게 하고 그 세상을 이 세상에 끌어들이거나, 이 세상에서 저 세상을 살게 하는 것이 아닐까? 그것이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가 뜻하는 바일 것이다.

 

성서는 동굴 밖의 세상을 먼저 보았던 많은 선각자, 예언자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신약성서의 부활사화도 이런 전혀 다른 세계를 체험한 이들이 자신들의 체험을 다양하게 표현하는 초청이 아닐까!

 

부활 제 2주일인 오늘은 요한바오로 2세께서 ‘자비의 하느님’을 기리도록 당부하셨다. 바리사이들의 하느님인 좁쌀영감 같은 하느님이 아니라 자비의 하느님을 기릴 수 있으려면 먼저 인간은 스스로에 대한 건강한 연민이 있어야 하며, 이것은 우리들 자신과 우리 인간이 처한 상황에 대한 가감 없는 현실인식을 바탕으로 한다. 가끔 우리는 어떤 철학자나 신학자보다 더 깊이 사안을 통찰하고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소박한 언어로 소통하며 삶의 실상을 드러내 보여주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 나의 관점에서 그런 사람 중 하나는 레너드 코헨(Leonard Cohen) 이다. 그는 만년의 노래 Anthem에서, 이 세상은 완벽한 낙원이 아니라 실낙원이며 그런 불완전한 곳에서 살아가야 하는 우리 인간은 아담과 이브의 후예임을 깊이 인식하고 하느님께 완전한 예물을 바칠 수 없는 무능을 받아들이라 한다. 우리네 삶이 하나의 옹기를 만드는 과정이라면, 우리네의 바람과는 달리 나이가 들수록 우리가 빚는 옹기에는 오히려 더 많은 금이 감을 보게 될 거라고…….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빛은 금을 통해서만 스며들게 마련이며, 이렇게 스며든 빛은 잘잘못을 가려 또다시 그림자를 만드는 빛이 아니라, 자신이 몸소 겪었기에 드디어 용서하고 포용할 수 있게 하는 빛이다. 여인을 단죄하려는 자리에서 나이든 사람부터 먼저 떠났음을 기억하자. 바로 이것이 ‘하느님은 부서지고 낮추인 마음을 낮추 아니 보시는“ 까닭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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