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사색

매일매일 좋은 날

by 후박나무 posted Jun 13, 2019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매일매일 좋은 날

 

   세상에는 ‘금방 알 수 있는 것’ 과 ‘바로는 알 수 없는 것’ 두 종류가 있다. 금방 알 수 있는 것은 한 번 지나가면 그걸로 충분하다. 하지만 바로 알 수 없는 것은 펠리니 감독의 <길>, La Strada처럼 몇 번을 오간 뒤에야 서서히 이해하게 되고, 전혀 다른 존재로 변해 간다. 그리고 하나씩 이해할 때마다 자신이 알고 있던 것은 지극히 단편적인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차” 라는 건 그런 존재다.....

 

   그러자 어느 날 갑자기 비가 흐릿하게 냄새를 풍기기 시작했다. “아, 소나기가 오려나 봐.” 하고 생각했다. 정원수를 두드리는 빗방울이 이제까지와는 다른 소리로 들려왔다. 그리고 바로 흙냄새가 자욱이 피어올랐다.

그때까지 비라는 건 그저 하늘에서 떨어지는 물일 뿐, 냄새 같은 것은 없었다. 흙냄새도 나지 않았다. 나는 유리병 속에서 바깥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 유리 장막이 사라지자 계절이 ‘냄새’나 ‘소리’ 같은 오감에 호소하기 시작했다. 나의 존재가 태어난 물가의 냄새를 분간하는 한 마리 개구리 같은 계절의 생명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달비가 쏟아지는 날이었다. 빗소리를 계속 듣고 있었더니 불현 듯 방이 사라져 버린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쏟아지는 빗속에 있었다. 비를 듣는 동안 어느새 내가 비 그 자체가 되어 선생님 댁의 정원수에 쏟아지고 있었다.

 

   “살아 있다는 건 이런 것이었구나!”

   소름이 돋았다.

 

   삶이 버겁고 힘들 때, 캄캄한 어둠 속에서 나를 잃었을 때, 차는 가르쳐 준다.

 

    “긴 안목을 가지고 현재를 살아라”

 

   '매일매일 좋은날" 의 서문을 읽으니 자연스레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우리는 특정한 종교를 믿을 필요가 없다. 우리 문화가 바로 종교이기 때문이다” 라던 중국인 비교종교학자!. 그러나, 실제로 현세의 사물이 부지부식간에 영원으로 이어져 시간과 영원의 차원이 포개지는 체험을 하게되는 문화적 장치는 일본에 많다. 위에 길게 인용한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 의 서문에도 ‘내가 사라지고 다시 태어나는’ 순간에 대한 체험은 특정한 교리나 전례속에서가 아니라 생활인의 ‘차’를 통해 이루어진다. 그러나 그 묘사는 관상기도의 체험과 매우 유사하다. 선(禪) 은 주문한다. 삶을 맨 손으로 잡으라고! 사람은 가끔씩이라도 그렇게 다른 차원, 샘, 자기만의 우물에서 생수를 마셔야 한다.

 

선에는 이런 문제가 있다고 한다. 새가 아직 어렸을때 추위와 더위, 적들로부터 보호하기위해 병속에 넣어 길렀다. 새가 어릴때는 주둥이가 좁은 병이 안전한 은신처가 되었으나 이제 새가 크니 감옥이 되었다. 병을 깨뜨리지 않고 새를 꺼내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