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품을 받고 몇 년간 서울 명상의 집에서 피정지도를 할 당시는 사순절, 대림절에 주말피정은 물론이고 하루 피정이 많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다른 사람들은 준비시키지만 정작 본인은 메마르기 일쑤였다.
그 해도 그렇게 바삐 지내다 성탄이 코앞에 다가온 어느 날, 감실 앞에 앉았다가 졸면서 꿈을 꾸었다. 마당에는 잡초가 그득하고, 다 기울어 곧 쓰러질 것 같은 집 툇마루에 어떤 노인이 기운 기둥에 기대어 졸고 있는 꿈이었다. 꿈은 자주 백 마디 말보다 더 명징하게 우리의 내면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런 상태에서 구유경배가 시작되었는데 서울 명상의 집에서는 해마다 구유를 현관에 마련하였다. 구유 왼쪽 끄트머리에 장궤하고 있던 나는 새삼 우리가 구유를 꾸미는 장소가 화장실 바로 옆임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장궤한 자리는 화장실에서 가장 가까운 곳임도!
성과 속이 만난다는 것, 하느님이 구유에 누우신다는 것! 나는 그래도 솔이 밥그릇을 자주 깨끗이 닦지만(^^) 여물통을 자주 닦아주는 사람은 없을 것 같다. 더깨가 낄 때까지. 두 달쯤 전 아마존에 영문판 寒山시 100선집을 주문하여 읽고 있다. 한산의 시가 마음에 와 닿는 건, 깨달음의 정점에 이른 사람도 몸이 있는 한, 역시 사람임을 일깨워주기 때문이다. 국역시집은 60 여수만 게재했지만 원문도 있는 이점이 있다. |
박태원 가브리엘 C.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