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 고 하지만 세상사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수많은 변수 X 중 하나는 까치란 녀석이다. 농부가 콩 심는 것을 멀리서 곁눈질로 보며 기다리다, 파먹고는 실례까지 하고 가니 말이다. 너무나도 합리적인 사회에서 효율을 숭상하며 살다보니 우리는 순리 혹은 섭리를(順理, 攝理) 논리(論理) 와 혼동하며 사는가 보다. 그러나 섭리를 반영하는 현실은 단선적인 논리를 따르기 보단, 수많은 변수 X 가 서로 작용하여 나비효과를 일으킨다는 카오스 이론에 더 어울린다.
자녀에게 줄 것을 강아지에게 줄 수 없다는 너무나도 합리적인 말에 따끔한 일침을 놓던 시로 페니키아 부인, 무덤을 막은 바위를 치울 아무런 현실적인 수단도 없이 향료를 들고 무덤으로 뛰어가던 막달라 마리아, 그리고 모든 희망이 사라지고 남은 거라곤 고통을 더할 뿐인지라 다 떠나간 십자가 아래 대책 없이 무모하게 그냥 들이대는 성모님을 비롯한 여인들을 보면 이들은 본능적으로 단선적인 논리가 아니라 情을 따르는 것 같다. 그리고 알다시피 아무짝에도 쓸모없을 것 같던 정이 무언가 다름을 이 세상에 끌어들인다.
때가 때인지라 정당해산 판결도 그렇고 노조에 대한 것도 그렇고 사법부가 가진 이들과 힘 있는 이들을 노골적으로 편드는 기색이 농후하다. 손해배상 판결로 임금, 퇴직금, 상여금, 집, 자동차, 통장이 모두 가압류되는 경제적 위기와 가족해체 등에 처한 이들의 생계 및 의료비 긴급지원, 법률 개선 활동 지원을 위해 노란봉투 보내기 시민운동이 있었다. 뜻있는 분들 47,213명이 47000원씩 갹출하여 총 1,468,694,745원을 모았다. 가만 생각해보면 이들의 모습은 십자가 아래 옹기종기 모여 십자가에 달린 이의 고통을 함께 나누던 여인들과 다르지 않다. 그렇게 한다하여 전혀 무슨 상황이 개선될 것 같지 않으면서도,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연대하는 모습 말이다. 오늘 통고의 성모 기념일을 맞아 연대의 의미를 되새겨본다. |
박태원 가브리엘 C.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