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까지만 해도 나는 다른 집들이 다 우리 집같이 사는 줄 알았다. 중학생 때 알게 된 한 친구의 산동네 집을 가보고서는 많이 놀라고 달리 보기 시작했다. 여름이라도 집밖에 나갈 때는 런닝샤츠만 입어서는 안 되고 꼭 남방등 겉옷을 걸쳐야 했던 나는 헤지고 꾀죄죄한 런닝샤츠를 입고 학교에 오는 동료들의 부모를 이상하게 생각했다. 또 공부할 방도 책상도 시간도 없는 가난한 가정을 모르니 숙제를 않해 오는 이들도 이해하지 못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처음으로 사립국교 리라가 생겨 전학하려고 추첨을 했는데 떨어졌기에 망정이지 아니면 그런 체험조차 없을 뻔했다. 수도권인구가 2500 만이고, 그중 반 정도가 자기 집이 없다고 한다. 자기 집이 있는 세대중 절반 정도는 빚을 안고 샀기에 자기 집에 못살고 다시 세를 산다고 한다. 줄잡아 1500 만 정도는 치솟는 전세 값을 감당할 수 없어 울며 겨자 먹기로 대출을 받아 간신히 셋집에 거하는 형국이다. 폭등한 전세 값을 맞추고자 1억을 대출받은 가계는 뻔한 한 달 수입에 원리금 상환 몇 십만 원의 부담을 더 지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어느 누가 세상걱정, 재물걱정에서 벗어나 가시밭이 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부잣집 딸이 가난한 집을 묘사하면서 운전기사, 비서, 침모, 요리사, 정원사, 하녀등 모두가 가난하다 했다한다. 가만 돌아보면 집세에 쪼들리며 살림을 걱정하며 사는 성직자, 수도자가 얼마나 될까? 그들이 좋은 땅에 떨어진 씨가 백배 열매를 맺었다는 이야기를 할 때 그것은 자기들은 손가락하나 까딱하지 않고, 이미 힘든 짐을 진 사람에게 다시 다른 짐을 더 얹어놓는 것은 아닐까? 자신들은 십자가 아래에 있는 것이 아니라, 리라국민학교에 다니면서 말이다.
씨를 뿌릴 땅이 대부분 가시덤불이라면 어떻게든 가시덤불을 좀 거두어낼 일이다. 궁극적으로 그 일은 정치가 정책을 통해 할 수밖에 없다. 그런 정책을 만들고 올바른 정치를 할 사람을 선출하게 깨어있게 하는 일은 종교가 할 수 있는 일이다. 땅에서 넘어진 이는 결국 땅을 짚고 일어날 수밖에 없다. 이 극도로 불평등한 사회를 고치는 일은 결국 그 사회에서 고통을 겪는 이들과 뜻있는 이들의 몫이다. 노무현 정부 때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낸 경북대 이정우 교수가 정년을 맞은 것을 기념해 30명쯤 되는 학자들이 “불평등 한국, 복지국가를 꿈꾸다” 라는 대중용 논문집을 냈다. 일독을 권한다. |
박태원 가브리엘 C.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