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광화문 사거리를 지나다 교보빌딩에 걸린 펼침 막에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 는 글귀를 보았다. 우연인지 의도적인 표절인지는 몰라도 가톨릭에서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금언을 똑 닮았다. “교회는 성체성사를 거행하고, 성체성사는 교회를 만든다” - 하느님의 백성은 성체성사를 거행하고, 성체성사를 통해 하느님의 백성이 형성된다.
성체와 성혈하면 나는 언제나 셰익스피어의 희곡 “베니스의 상인” 이 떠오른다. 샤일록이 피를 흘리지 않고 살만 1파운드 떼어낼 수 없듯이 살과 피는 결합되어 있으므로,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는다 함은 그분과 동화되어 Alter Christus(제2의 그리스도) 가 됨을 뜻할 것이다.
마르코복음은 예수의 살과 피를 먹어 그분과 하나 되는 것이 어떤 뜻인지를 복음의 전반부에서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 로, 후반부에서 “포도원 소작인의 비유”를 통해 보여주며 최후의 만찬석상에서 이 둘을 하나로 연결한다.
씨는 하느님의 말씀이고, 씨 뿌리는 사람도 말씀이며, 이 씨는 싹이 트고 자라 다시 곡식으로 추수되며, 갈아져 빵이 되어 많은 사람에게 음식이 된다(6장, 오천 명을 먹이심). 한편 12장 포도원 소작인의 비유에선 정의와 공정 즉 사회정의를 요구하는 하느님의 종들과 하느님의 아들은 불의한 체제를 유지하려는 힘 있는 사람들에게 살해된다. 씨가 곡물이 되고 다시 빵이 되듯, 포도는 포도주가 되고 살해당한 하느님 아들의 피가 되는 것이다. 예수님은 이 두 비유를 최후의 만찬에서, 이는 내 몸이다 와 이는 내 피라는 말씀으로 하나로 만든다. 개인의 이기심을 극복하고 서로 나눠 먹고, 그런 나눔을 제도적으로 불가능하게 하는 소작인들에게 공정과 정의를 요구하라는 성체와 성혈 대축일의 의미를 새긴다.
박태원 가브리엘 C.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