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사색

씨와 씨 뿌리는 사람

by 후박나무 posted Sep 22,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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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무리를 하여 강릉의 솔이를 만나 회포를 풀고 양양 수도원도 방문했다. 덕분에 몸도 마음도 파김치처럼 처졌지만 다녀오기를 잘했다. 짧은 여행 1박2일 동안 가을장마라도 든 듯이 계속 비가 내리더니 오늘은 화창하게 개어 푸른 하늘이 보인다. 이틀 만에 우이령을 오르니 양지 녘에 선 벚나무 잎 절반이 불그스레하게 물들었다. 나뭇잎 하나 떨어지면 천하에 가을이 왔음을 안다고 했는데!

 

“눈물로 씨 뿌리던 사람들이, 곡식단 들고 올 때 춤추며 돌아오리이다” 헤밍웨이의 소설 “노인과 바다”에서 80이 넘은 늙은 어부 산티아고가 80일이 넘도록 고기 한 마리도 못 잡는 불운에도 불구하고, 매일 바다에 나가 낚시를 하듯, 우리도 그렇게 티나지 않고 아무렇지도 않아 당연해 보이지만 속내로는 만만치 않은 일상을 살아낸다. 그러다 큰 고기라도 잡히면 결과야 어떻든 그것을 싣고 항구로 돌아오려고 애쓴다. 살이 다 발라진 가시만 싣고 돌아오게 되더라도. 그런 일상을 살아내면서 우리도 나름 매일 씨를 뿌린다.

 

아무 색이 없는 빛이 프리즘을 통과하면서 여러 가지 스펙트럼으로 나눠지듯, 우리의 일상이라는 씨도 누가, 언제, 어떻게, 어디에 뿌리느냐에 따라 수확이 달라진다.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에서 씨는 하느님의 말씀이며, 하느님의 말씀은 곧 씨 뿌리는 사람이다.

다윗 왕이 자기아들 압살롬이 일으킨 반란을 진압하고 초조히 압살롬의 안부를 기다리다 한 전령이 달려오는데, 달리는 품이 아히마스 같다는 보고를 받고는 “그는 좋은 사람이니 희소식을 가지고 왔을 것이다.”(사무엘 하 18:27) 하고 말한다. 이 대목에서 “행위는 존재를 따른다” 는 존재의 우선성이 떠오른다.

 

우리가 뿌리는 씨, 일상의 존재가치를 높이는 것은, ‘노인과 바다’ 의 노인이 주어지는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