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사색

카피

by 후박나무 posted Jul 20,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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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아침부터 많이 불편했다. 성무일도까지는 견딜 수 있었는데 미사 때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 성당을 나가 옆방에서 참여하다. 몸의 상태는 종잡을 수가 없다. 태풍이 온다고 하더니 정말 고온다습(高溫多濕) 의 진면모(眞面貌)를 보여주려나 보다.

 

요즈음 미사의 제1독서로 예전에는 출애굽기라 하던 탈출기를 읽고 있다. 그리스어로 Έξοδος 니 탈출기라는 말이 맞다. 성서프로그램의 일환으로 그리스를 방문했을 때 아테네 공항에서 Έξοδος 란 그리스어 안내판을 보고 무척 신선한 쇼크를 받은 적이 있다. 우리나라의 지하철 등에서도 자주 보는 ‘출구’(Exit) 라는 말인데, 성서에서나 보던 그리스어 엑서더스를 지금, 여기서 보니 색다른 느낌이었다. 탈출기를 보면 히브리인들을 하나의 운명공동체로 만든 역사적인 사건과 그 사건의 의미에 대한 해석이 주를 이룬다. 긴 이야기 짧게 하면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 와 같이 히브리인들은 자신들이 함께 겪은 역사적인 사건들을 해석하고 기억을 편집하여 이야기를 만들었고, 그 이야기는 전례에 참석하는 후손들에게 되풀이 되어 전통과 공동체를 형성한다. 물론 이 이야기는 시대에 따라, 후손들이 처해 살아가는 삶의 자리에 따라 조금씩 재해석되어, 나중에는 과거의 사건이 현재와 미래를 위한 교훈이 되도록 만든 역사가 된다. 이 카피의 원조는 ”교회는 성체성사를 거행하고, 성체성사는 교회를 만든다. “ 이다.

 

비슷한 예가 또 있다. 가장 성공한 것으로 평가받는 모 건설사의 CF 문구는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줍니다”라는 것이었다. 공간에서 특별함을 얻을 수 있다는 인식, 특히 자신이 사는 곳의 이름과 자신의 품격을 동일시하는 풍조가 이때부터 널리 퍼져나갔다. 어느 브랜드 아파트에 살고 있느냐, 하는 것이 한 개인과 그가 속한 가정이라는 소집단의 위상을 드러내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런데 이 카피의 원조는 아이러니하게도 광야에 살던 은수자들이며, “사람은 살아가는 환경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는 의미였다. 그들이 광야나 사막으로 나아간 이유다. 오늘 같은 풍조나 맥락이라면 은수자들은 이렇게 말했을 것 같다.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을 말해주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