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사색

후기

by 후박나무 posted Jun 03,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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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11월 초순의 어느날 자정 무렵, 구 예루살렘 근교의 베타니아에 국제학생단 20 여명이 모여 감사미사를 드렸다.  4달여에 걸친 예루살렘 성서 프로그램을 마치고 새벽 루프트 한자 편으로 벤 구리온을 떠나 프랑크 프루트를 거쳐 미국 시카고 오 헤어 공항으로 가는 길이었다.

 

지도교수였던 프란치스칸 레슬리 교수가 주례와 강론을 한 그날 한범의 미사는 지금껏 마음에 큰 자리를 차지한다.

 

“보통 사람들이 들으면 이상할지 몰라도, 성서와 히브리어 희랍어 문법책과 사전, 주석서, 컴퓨터 등은 내가 하느님을 섬기는 도구이다. 나는 이 도구를 갖고 제대인 책상에서 하느님의 백성을 섬긴다.”   이 강론은 그 후 나 자신의 수도생활 양식과 몫을 이해하고 정체성을 갖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어제 베드로에게 하신 예수님의 말씀처럼 이젠 삶의 국면이 바뀌었다.  이렇게 바뀐 국면에서 “나를 따르라” 는 말씀은 어떤 형태로 형상화되어야 하는지?  그 역시 번쩍하는 황홀한 순간에 보았던 비전을 열쇠로 모색해야하는가 보다.

 

//…내 인생은 순간이라는 돌로 쌓은 성벽이다.

어느 돌은 매끈하고 어느 돌은 편편하다.

굴러 내린 돌, 금이 간 돌, 자갈이 되고 만 돌도 있다.

아래쪽의 넓적하고 큰 돌은 오래된 것들이고

그것들이 없었다면 위쪽의 벽돌의 모양은

우스꽝스러웠을 것이다.

어느 순간은 노다지처럼 귀하고

어느 벽돌은 없는 것으로 하고 싶고

잊어버리고도 싶지만

엄연히 내 인생의 한 부분이다.

 

….나는 안다. 내 성벽의 무수한 돌중에

몇 개는 황홀하게 빛나는 것임을.

또 안다.

모든 순간이 번쩍거릴 수는 없다는 것을.

알겠다.

인생의 황홀한 어느 한 순간은

인생을 여는 열쇠구멍 같은 것이지만

인생 그 자체는 아님을.//

 

 

성석제 작가의 후기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