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복음사가가 전하는 예수고난 시리즈를 작년 사순절에 완역 출판했으니 벌써 한 해가 지났다. 저자인 도널드 시니어 신부는 87년 뉴욕의 자마이카 수도원에서 열렸던 Passionist Heritage Institute-고난회 遺産 傳授會라 할까-에서 처음 만났다. 처음 만나는 서먹함을 조금이나마 부식시키기 위해 보통 강사는 가벼운 Joke로 강의를 시작하는데, 시니어 신부가 우스갯소리 소재로 삼은 것이 바로 오늘 복음 본문이다. 요지는 자신이 무엇을 청하는지도 모르고 청하다가 하느님이 정말 들어주시면 큰일 나니 조심하라고^^ 제베대오의 아내,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는 주님의 오른쪽과 왼쪽(영의정, 좌의정) 자리를 청탁했는데, 주님이 안 들어주셨으니 망정이지 들어주셨으면, 골고다 언덕의 세 십자가중 둘을 차지할 뻔 했다고. 당시는 아직 김영란 법이 없었다 ㅋㅋㅋ
나는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 全無하지만, 세상 모든 어머니는 자식이 無病長壽하고 立身揚名하기를 바랄 것 같다. 역사상 셀 수없이 많게 어머니의 현실적, 본능적, 감정적인 바람과 자식의 비현실적이고 이성적, 논리적인 추구가 충돌했을 것이다. 그런 적나라한 충돌중 하나가 골고타 언덕에서 예수와 어머니의 상봉일 것이다.
독수리라는 상징에 걸맞게 요한 복음사가는 높이 날아 멀리 본다. 요한은 이성과 감성, 현실과 이상 사이의 해묵은 갈등을 해소하는 열쇠를 모자의 대화를 통해 전한다. 이것은 오랜 관상기도의 결실일 수밖에 없을 듯하다.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어머니의 본능은 혈연을 넘어 확대 돼야 하고, 자식들은 어머니의 본능을 존중해야 할 것이다.
보통 우리가 사는 차원의 세상에선 상충하는 가치중 하나를 선택하게 된다. 이것이냐 저것이냐의 차원이다. 예를 들어 교사가 교실의 기강을 확립하고 경직된 분위기를 감수하던가, 자유를 주고 방종을 감수하던가! 이것이냐 저것이냐가 아니라 이것도 저것도가 되려면 한 차원 높아져야 한다. 진정한 의미의 사랑이란 차원에선 기강과 자유가 양립할 수 있다. 범인인 우리들은 관상기도의 때에나 잠시 그 사랑의 차원, 자유로운 차원을 맛보다 다시 타볼산 아래로 내려와 이것이냐 저것이냐의 시비와 분별심의 세계에 산다. 아직 평상심이 도는 아닌 단계에 있기에!
박태원 가브리엘 C.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