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사색

물고기

by 후박나무 posted Aug 25,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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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회 고유 통고의 성모 신심미사를 드리다. 요한이 그리는 십자가 장면에만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사랑받던 제자가 함께 나온다. 예수는 아들로서 어머니에게 마지막 효성을 드림과 동시에 마리아는 이 순간부터 모든 예수의 제자들에게 영적인 어머니, 새로운 이브로 받아들여진다.

 

ιχθύς: 물고기, 예수 그리스도 하느님의 아들 구원자의 첫 글자만 따면 물고기라는 단어가 된다. 초대 교회에서 자신이 신자임을 알리는 사인이었다. 예수 크리스토스 테오스 휘오스 소델 Ιησούς Χριστός Θεός γιος σωτήρ

 

 

Fuscaldo

 

1991년 6월, 대학원 2학기를 마치고 아일랜드로 본격 여름방학을 지내기 위해 떠나기 전, 로마에서 남쪽으로 400 키로 떨어진 Fuscaldo에 있는 고난회 수도원으로 연례피정을 갔다.

 

수도원 앞은 깎아지른 절벽이었고 날마다 저녁이면 지중해로 지는 아름다운 낙조를 볼 수 있었다. 주방 책임자셨던 브루노 수사님은 유고슬라비아 이민자 후손으로 이탈리아어는 못하셨지만 마음이 통해서 친하게 지냈다.

 

기도하고 산책하고 책 읽는 단조로운 피정을 하던 중 3일째 저녁이던가, 낙조가 지는 지중해를 내려다보면서 하느님께 청을 드렸었다. 지금 기억에 특별한 청은 아니었고, 하나의 Sign 깊이 숙고할만한 사인을 달라했던 것 같다.

 

그리고는 그날 밤 참으로 의미심장한 꿈을 꾸었다.

 

햇볕이 따스한 화창한 날 나는 호화 크루즈 유람선을 타고 항해하고 있었다. 갑판위에는 풀장이 있었고 화려하게 차려입은 상류층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넘쳐나고 있었다. 갑자기 저 멀리 바다에서 거대한 물고기가 깊은 바닷속에서 용수철처럼 뛰쳐나와 하늘로 높이 치솟아 올랐다가 바다로 떨어졌다. 그런데 기이하게도 그 물고기는 바다 속으로 들어가지 않고 물위에 그냥 떠있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웅성거리며 한쪽 갑판으로 몰려들어 구경하고, 배는 물고기가 떠있는 곳으로 향하였다.

 

갑자기 호화유람선과 웃고 떠들던 그 많은 사람들은 화창했던 해와 함께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구름이 낮게 드리운 음산한 하늘아래 아주 낡고 허름한 통통배에 나와 나의 친구라는 그림자와 같은 사람만이 타고 있었다.

 

커다란 물고기가 떠있는 곳으로 가까이 가니, 물고기는 집채정도 크기의 빙산으로 변해있었고, 그 얼음위에 벌거벗은 남자가 가슴에서는 피를 흘리며 발을 바닷물에 담근 채 앉아있었다. 그는 우리배가 다가가도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않은 채 미동도 없이 그대로 앉아있었다.

 

통통배에 타고 있던 나는 나의 친구라는 이에게 저 사람을 구조해야겠다고 했으나, 마치 그림자와 같이 실루엣만 보이던 친구라는 이는 경찰에 신고하고 이 자리를 뜨자고 권했다. 결국 그 친구라는 이의 의견을 따르면서 잠에서 깨어났다. 시계를 보니 새벽 2시쯤 되었던가…….너무도 생생했지만 다시 잠들면 무의식으로 다시 잠길 것 같아 기록을 하고 자다.

 

처음에는 ‘예수 그리스도 하느님의 아들 구원자“ 라는 그리스 단어의 첫 글자의 조합으로 물고기를 생각했으나 세월이 가고 나이가 들고 자신을 더 이해하게 되면서 점점 일생을 조망하는 큰 그림임을 깨닫게 되다. 새삼 꿈은 무의식이 의식에 보내는 메시지임을 확인하다. 꿈은 특히 의식이 상정하는 자아의 모습과 무의식이 보는 자아의 모습이 크게 어긋날 때 이를 보정하려는 자비로운 메시지다.

 

바다속은 무의식, 바다위는 의식, 무의식 속 깊이 억눌려 있던 내적자아가 온 힘을 다하여 뛰어올라 의식세계의 외적자아에 그 모습을 드러낸다.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에 머물며 물고기는 마치 계시하듯이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보여준다. 겉으로는 화려한 유람선을 타고 유쾌하게 지내지만, 내면의 실상은 외부 세계와는 자의반, 타의반 완전히 절연되어 가슴에서는 피를 흘리며, 감각이 마비되어 추운지도 모르고 차가운 얼음에 발가벗고 앉아 발을 바닷물에 담그고 외부세계에는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않고 머리를 숙이고 있던 아이.

 

이 내면의 아이가 고통을 느끼지 않으려 외부세계와 절연하고, 일부러 마비시켰던 감각을 되찾아 고통을 느끼고, 외로운 것 밖에 모르던 그가 그리움을 알게될 때 결국 나를 구원하리라는 의미에서 물고기라는 상징- 예수 그리스도 하느님의 아들 구원자- 가 맞다.

 

이것은 융 심리학을 원용한 나의 해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