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사색

영감은 생명

by 후박나무 posted Nov 19,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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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는 죽이고 영은 살린다’ 고 하듯, 하루를 여는 삼종기도문에 햇살이 비추듯 영감(Inspiration)이 감도되면 기도문은 생명을 얻어 마른 뼈가 꿈틀거리며 살아나듯, 의미가 충만하게 된다. 영감은 곧 생명이기 때문이다.

 

의미 있는 진정한 삶의 시작, 기원은 태어나면서부터가 아니라 영원으로부터 건네어지는 말을 들음에서 비롯된다. 주님의 천사는 비단 마리아뿐이 아니라 모든 시대, 모든 인간에게 말을 건네고, 이 말씀에 엉키면서 삶은 비로소 시작된다.

 

“요셉과 그의 형제들” 이라는 걸작을 쓴 토마스 만이나, “구약성서의 이해”를 쓴 석학 버너드. W 앤더슨이 그들의 책 서두에서 길게 기원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까닭이다. 성경에 소개된 요셉의 이야기는, 괴테의 표현 그대로 하자면 '너무 짧다'. 세계적인 문호 괴테는 작가라면 이처럼 아름다운 이야기를 세세하게 그려내야 할 것만 같은 일종의 사명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괴테가 이루지 못한 꿈을 토마스 만이 대신 실현한 것이다. 아주 짧은 단편소설을 장편으로 개작하여!

 

토마스 만은 자신이 이 작품을 쓰게 된 동기 중의 하나가 나이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전에는 종교사와 신학이 자신의 관심사가 되리라고 짐작도 하지 못했었는데 나이가 들어 인생을 돌이켜보니 인간, 혹은 인류의 기원에 천착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몰두하게 된 것이 성서와 신화라고 했다. 하나 더 덧붙이자면 오래된 ‘기도문’ 도 한 몫을 할 것이다. 앤더슨도 한 인간의 의미 있는 삶의 시작은 태생에 있는 게 아니라 어떤 특정한 사건에서 비롯됨을 강조한다. 이스라엘의 기원을 출애굽 사건에서 찾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유한한 세계에 갇혀 자기중심적으로 살아가던 인간에게 주님의 천사가 영원으로부터 건넨 말씀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마리아가 인류의 대표로서 겪은 원체험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 대부분 기쁜 소식이라기보다는 일상을 뒤흔드는 충격적인 사건이었을 게다. 혼인도 안한 처녀가 아이를 가질 때, 종교적이고 보수적인 사회에서 그녀가 감당하고 살아야 할 삶에 대한 전망은 충분히 절망적이었을 것 같다.

 

“주님의 종이오니 그대로 제게 이루어지소서” 와 이후의 응송, “이에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저희 가운데 계시나이다” 는 즉답이 아니라 그 충격적인 사건이후로 고단한 삶을 살아낸 후 뒤돌아보며 다다르게 된 결과물이 아닐까!

 

그러므로 삼종기도는 이 땅위에서 살아가려 애쓰며 피와 땀과 눈물을 흘리는 선남선녀들이 영원과 나누는 대화를 마리아가 대표로 바치는 기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