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사색

김춘수의 "꽃"

by 후박나무 posted Jul 22,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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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 막달레나의 이야기, 특히 오늘 부활사화의 대화를 보면 나와 그것, 나와 너의 관계가 얼마나 서로 다른 세상인지 잘 보여준다. 김춘수의 꽃처럼.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이른 새벽 막달레나는 무작정 무덤에 간다. 딱히 할 아무것도 없기에 아쉬운 마음에 애달픈 마음에 무덤으로 간다. 그리고는 자신의 마음처럼 텅 빈 빈 무덤을 만난다. 빈 무덤을 확인하고 하릴없이 숙소로 다시 돌아간 시몬 베드로와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제자와는 달리 막달레나는 그냥 빈 무덤에 머무른다. 대책 없이……. 논리적인 남성성과 감성이 강한 여성성의 차이일까! 헤르만 헷세의 ‘나르찌스와 골드문트’ 의 차이일 것 같다. 혹은 노무현 대통령의 연설과 문재인 대통령의 연설 차이?

 

합리적인 시몬 베드로와 다른 제자와는 달리 할 일이라곤 우는 것뿐일 막달레나의 머무름은 전혀 다른 세상으로 그녀를 인도한다. 먼저 천사와의 대화 그리고 이어진 동산지기로 여긴 이와의 대화.

 

처음 나와 그것으로 시작된 대화는 예수가 “마리아야!” 하고 이름을 부를 때 나와 너의 차원이 된다. 김춘수의 ‘꽃“ 이 되는 것이다. 이런 비합리성과 인격적인 요소의 결핍으로 우리의 신앙생활에 먼지가 날리나보다. 어린아이가 되라는 말씀도 같은 맥락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