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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원 가브리엘 신부님의 묵상글입니다.
복음 사색

피정

by 후박나무 posted Jun 13,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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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남종삼 요한 성인의 후손인 남 교수님이 삼양동 재활원에 오셨다 내친김에 명상의 집까지 걸음을 하셨다. 삼양동의 집을 도미니코회에 팔고 평창동으로 이사가신지도 꽤 오래 되었다. 사모 로사씨는 벌써 작고하시고, 남교수님도 풍을 맞아 거동이 자유롭지 못하다. 로사씨는 새 신부였던 저에게 무능한 것을 감추느라 원칙에 매달리지 말고 能小能大해야 함을 가르쳐주신 분이다. 영원한 안식을 누리소서…….

 

굴원의 어부사에 나오듯

滄浪之水淸兮 可以濯吾纓(창랑지수청혜 가이탁오영)

창랑의 물이 맑으면 갓 끈을 씻고

滄浪之水濁兮 可以濯吾足(창랑지수탁혜 가이탁오족)

창랑의 물이 흐리면 내 발을 씻으리

 

이런 유연성을 가지려면 세상이라는 밭에서 얼마나 굴러야 하는 걸까?

 

빛과 소금이 되라는 권고는 쉽게 그 의미가 윤리,도덕으로 한정되곤한다. 빛은 사물이 제 꼴과 색을 드러내게 하고, 소금 역시 제 맛이 나게 하는 역할을 한다.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저마다 자기로서 살 수 있게 하는 사람은 그 역시 자기가 아닌 남을 연기하지 않고 ‘생긴대로 사는 사람’ 일 것이다. 생긴대로 살기 위해선 자신이 누가 아닌지 깨닫는 긴 여정도 필요했겠다.

 

서정주 시인이 노래했듯,“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이제는 돌아와 거울앞에” 서서, 시공간의 거리는 물론 심리적,영성적 거리를 갖고 거울을 들여다보는 긴 시간을 가졌을게다. 설직(薛稷)이 추조람경(秋朝覽鏡) 에서  生涯在鏡中(생애재경중) : 내 삶이 거울 속에 있구나 할때처럼.

 

도종환 시인의 ‘멀리 가는 물’은 좋은 은유다.

 

어떤 강물이든 처음엔 맑은 마음

가벼운 걸음으로 산골짝을 나선다

사람 사는 세상을 향해 가는 물줄기는

그러나 세상 속을 지나면서

흐린 손으로 옆에 서는 물과도 만나야 한다

이미 더렵혀진 물이나

썩을 대로 썩은 물과도 만나야 한다

이 세상 그런 여러 물과 만나며

그만 거기 멈추어 버리는 물은 얼마나 많은가

제 몸도 버리고 마음도 삭은 채

길을 잃은 물들은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다시 제 모습으로 돌아오는 물을 보라

흐린 것들까지 흐리지 않게 만들어 데리고 가는

물을 보라 결국 다시 맑아지며

먼 길을 가지 않는가

때묻은 많은 것들과 함께 섞여 흐르지만

본래의 제 심성을 다 이지러뜨리지 않으며

제 얼굴 제 마음 잃지 않으며

멀리 가는 물이 있지 않은가

 

 

그렇게 살아온 삶을 음미하는 두 사람의 글을 본다.

성석제와 Pesha Gertler!

 

//…내 인생은 순간이라는 돌로 쌓은 성벽이다.

어느 돌은 매끈하고 어느 돌은 편편하다.

굴러 내린 돌, 금이 간 돌, 자갈이 되고 만 돌도 있다.

아래쪽의 넓적하고 큰 돌은 오래된 것들이고

그것들이 없었다면 위쪽의 벽돌의 모양은

우스꽝스러웠을 것이다.

어느 순간은 노다지처럼 귀하고

어느 벽돌은 없는 것으로 하고 싶고

잊어버리고도 싶지만

엄연히 내 인생의 한 부분이다.

 

….나는 안다. 내 성벽의 무수한 돌중에

몇 개는 황홀하게 빛나는 것임을.

또 안다.

모든 순간이 번쩍거릴 수는 없다는 것을.

알겠다.

인생의 황홀한 어느 한 순간은

인생을 여는 열쇠구멍 같은 것이지만

인생 그 자체는 아님을.//

 

 

The Healing Time Pesha Gertler

                                                Finally on my way to yes
                                                I bump into
                                                all the places
                                                where I said no
                                                to my life
                                                all the untended wounds
                                                the red and purple scars
                                                those hieroglyphs of pain
                                                carved into my skin, my bones,
                                                those coded messages
                                                that send me down
                                                the wrong street
                                                again and again
                                                where I find them
                                                the old wounds
                                                the old misdirections
                                                and I lift them
                                                one by one
                                                close to my heart
                                                and I say    holy
                                                holy.

 

마침내 나의 삶을 수긍하고 받아들이기까지, 나는 ‘아니오’ 하며 거부하던 온갖 곳에 부딪히며 살아왔네

방치된 울긋불긋한 상처와 흉터, 상형문자로 피부와 뼈에 새겨져 암호화된 고통의 메시지는 거듭 거듭 나를 잘못된 길로 이끌고

그 뒷골목에서 오래된 상처, 오랜 방황을 되돌아보며 하나하나 들어 가슴에 대며 속삭인다 거룩, 거룩하다고

 

소설가 황석영씨가 자전적 기록 “수인”을 내었다 한다. 그분의 작품 ‘손님’ 에서 처럼, 나의 삶에 등장하는 인물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새삼스레 자신의 이야기를 할 기회를 주어야겠다. 그럴 마음이 드는 것은 이제껏 너무 주인공인 나만의 관점에서 보아 왔다는 자각이 생겨서다. 새롭게 이해된 등장인물들이 빚어내는 새로운 상황에서 나의 삶은 어떻게 달리 이해되는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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