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사색

Sensus plenior

by 후박나무 posted Apr 09,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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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사하게 피었던 목련(木蓮) 도 비바람에 색이 바래 아롱아롱 지고 있다. 누구는 “꽃잎 떨어져 바람인가 했더니 세월이더라!” 했었지. 나무에 핀 연꽃도 온 산을 물들인 진달래도 이렇게 봄날이 가고 있음을 알린다. 그나저나 너무도 오랜만에 들어보는 빗소리다. 차분히 2~3일 내려 땅에 충분히 스몄으면 좋겠다.

 

민수기의 불 뱀 이야기는 그 자체만으로도 참으로 미스터리한데다 요한복음의 예수님이 자신을 광야에서 들어 올려진 구리 뱀이라 언급 하여 더욱 알쏭달쏭해진다.

 

불 뱀이 나타나 사람들을 물어 죽인 발단은

“당신들은 어쩌자고 우리를 이집트에서 올라오게 하여,

이 광야에서 죽게 하시오? 양식도 없고 물도 없소.

이 보잘것없는 양식은 이제 진저리가 나오.” 하며 불평을 늘어놓은 것이다.

 

찬찬히 생각해보면 불 뱀에 물린다는 것은 자신들의 뿌리를, 지금 가고 있는 여정자체의 의미를 송두리째 부정하는 행위를 뜻하는 것 같다. 그리고 이런 자기부정의 결말은 살아도 산 것이 아닌 죽음 같은 삶과 무의미다. 여기서 회복되는 길은 요한계시록 2장의 에페소 교회에 건네는 충고와 같다. 4 그러나 너에게 나무랄 것이 한 가지 있다. 그것은 네가 처음에 지녔던 사랑을 버린 것이다.

5 그러므로 네가 어디에서 빗나갔는지를 생각하여 뉘우치고, 처음에 하던 일들을 다시 하여라. 만일 그렇지 않고 뉘우치지 않으면 내가 가서 너의 등경을 그 자리에서 치워버리겠다.

 

그러므로 현재의 나로서는 구리 뱀을 만들어 그것을 바라봄은 어디에서 빗나갔는지를 생각하여 뉘우치는 일이 된다. 불 뱀이나 구리 뱀의 ‘더 깊은 의미’ 나 ‘더 충만한 의미’ 는 라틴어 Sensus plenior 에 맡긴다. 이 라틴어는 인간저자는 의도하지 않았지만 하느님은 더 깊은 의미를 의도했기에 역사가 진행되면서 충만히 밝혀진다는 성서주석학의 용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