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사색

사제직

by 후박나무 posted Nov 04,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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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에 동반자 미사 주례가 있어 평소보다 일찍 집을 나서다. 바람 한 점 없는 고요함이 산길을 더욱 적막하게 한다. 하루가 다르게 산색은 변해 산길은 황엽(黃葉)과 홍엽(紅葉)사이로 끊어질 듯, 끊어질 듯 이어진다. 마치 야곱의 사다리가 닿아있던 베델, 하느님의 집이자 하늘문 같다. 그 문으로 들어가 이어지는 길을 걷다보면 몸은 울긋불긋한 단풍이 되고 마음은 적멸(寂滅)에 가까워진다.

 

전망대에 이르러 ‘큰 바위얼굴’ 같은 오봉을 바라보고 서 있노라니 오늘은 평소 안 보이던 소나무가 눈에 들어온다. 마치 야훼 하느님께서 예레미야에게 “무엇이 보이느냐?” 하고 물은 듯이 오늘 나에게도 물어 오시는 듯. “바위틈에 뿌리를 내리고 어렵게 살아가는 소나무가 보입니다.” 십여 년전 남설악 흘림골로해서 등선대에 올랐을 때 처음으로 눈여겨보았다. 화강암의 암봉위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던 키 작은 소나무를. 마치 숫타니파타 경전의 한 구절을 육화시킨 듯하다.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진흙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처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바람에 날려 떨어진 곳이 어디든지, 씨앗은 수분과 기온등 조건만 맞으면 발아(發芽)하여 생명활동을 시작한다. 그곳이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높은 암봉(岩峰)의 갈라진 틈새일지라도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다. 생각해보면 사람도 소나무의 씨앗과 크게 다르지 않다. 씨앗이 바람에 날려 떨어진 곳에서 조건만 맞으면 발아하여 살아가야 하듯 사람도 그러하다. 다만 사람이 식물과 다른 점은 그렇게 발아하여 살아가다가도, 삶의 어느 시점에선 주어진 생명에 대해 태도를 정해야 한다는 점이다. 적극적으로 거부할 수도 있고 소극적으로 스스로의 삶을 부정적으로 영위하거나 사보타지 혹은 아무런 선택도 하지 않는 선택을 하고 무기력하게 살아 지워질 수도 있다.

 

하느님을 무엇보다 먼저 사랑하라는 계명은 “먼저 자신에게 주어진 생명을 귀히 여기라는 당부 말씀 같다.” 나아가 이웃의 생명은 물론 살아있는 모든 것이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권유다. 자신을 포함하여 살아있는 모든 것이 행복하기를 바라며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제직을 수행한다. 나름 사제로서 매일 제물을 바치는 것이다. “여우도 굴이 있고, 제비도 새끼 두는 둥지가 있사와도 제게는 당신의 제단이 있습니다. “ 우리는 그 제단에 좋은 것만 바치는 것이 아니라, 이 땅위에서 벌어지는 온갖 폭력과 눈물, 불의와 부정과 우리의 죄까지 바친다. 하느님은 이 모든 제물을 받으시고 오병이어의 기적처럼 은총을 베푸시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