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찾던 대학생 시절 청량리 어디에 있다는 수도회를 수소문해 간적이 있다. 사회에서 가졌던 지위나 전문직을 다 포기하고 하루 벌어 하루 먹는 막노동자의 삶을 산다고 했다. 창립자는 그렇게 가난을 실천하며 살았겠지만 제3세계에서 그렇게 살려는 사람은 불어를 배우고 파리까지 유학을 가서 그 삶의 양식을 배워야 하는가? 설명을 듣고 돌아오며 청빈하게 살기 위해 참 돈과 시간이 많이 든다는 생각에 실소를 금할 수 없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면 그 수도회의 딜레마만은 아닌 것 같다.
수도생활의 연륜이 많아지면서 성. 프란체스코가 한사코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이 조직화되는 것을 반대했던 심정을 이해한다. 오죽하면 하느님이 모르시는 3가지 중 하나가, 청빈을 모토로 창립된 프란체스코회의 재산이란 말이 있겠는가! 초원이 묘사될 때 더 푸르러지듯, 애당초 인간으로서는 가능하지 않은 목표라면 그런 자신과 이웃에 대한 연민의 정이라도 커져야 하겠다.
청빈이 궁상을 떨 정도의 궁핍은 아닐지라도 호의, 호식에 집세 걱정 없이 사는 건 아닐 것 같다. 공평과 정의라는 도조를 요구하는 포도원 소작인의 비유는 수석사제들과 율법학자, 원로등 종교지도자와 재벌을 향한 것이었다.
박태원 가브리엘 C.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