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인구가 2500 만이고 2010년 기준 자기 집 보유율이 50%를 조금 넘으니, 2년마다 1250만이 전셋집을 다시 구해야 한다. 여기다가 자기 집이 있지만 빚을 떠안고 샀기에 세를 주고 다시 셋집을 얻어야 하는 사람들이 줄잡아 600 만이 더 있다(자가 점유율 48%). 그러니 해마다 최소한 수도권에서만도 900만 명이 미친 듯 오르는 전세 값에 한숨을 쉬는 셈이다.
자녀들 학비와 생활비로도 빠듯한 수입을 가지고 천정부지로 치솟는 전세 값을 따라잡기는 애당초 가능치 않은 일이다. 거기다대고 먹을 것, 입을 것, 비바람 피할 곳 걱정을 하지마라, 그런 건 다 이방인이 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세상만사를 다 버리고 초연한 사람이던지 물정을 모르는 사람이겠다.
우리 성직자, 수도자들은 어디에 속할까? 먹을 것 입을 것 방세 걱정 없이 가진 사람들에 둘러싸여 ‘당신들의 천국’에 살기에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건 아닐까!
하느님이 이 모든 필요를 충족시켜 주시리라는 예수님의 약속에는 전제가 있다.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오늘 그 말씀은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가정과 그렇지 못한 가정이 연대하고 교류하여 맺어지는 것이 아닐까? 마태오 18: 19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 20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 교회가 계층 간의 단절을 강화하지 않고, 두 가정이나 세 가정을 연결하고 묶어주는 연결고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계층 간의 위화감만 완화 되도 통일의 기초는 놓일 것이다. |
박태원 가브리엘 C.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