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사색

집으로 돌아 갈 때!

by Paul posted May 17, 2015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미사강론을 준비하면서 할 말이 많은걸 보니 아직 숙성이 안된걸 알겠다레마르크의 서부전선 이상 없다에서 인상 깊었던 한 구절을 기억하다. “사람은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 모를 때만큼 멀리 갈 때는 없다” 오늘 어디로 가는 줄을 모르니 멀리 갈 것 같다.

  

몇 일간 돈암동 수도원에 머물면서 틈틈이 문화재를 찾다낙산에서 혜화문으로 이어진 성은 옛 보성고등학교 뒤에서 다시 숙정문까지 이어진다옛 성곽을 따라 걷기도 하고 성 밖 북쪽그러니까 유난히 문인과 예술인들의 자취가 많은 성북동도 갔다그중에서도 백미는 혜곡 최순우 선생 옛집이다평생 한국의 미를 찾아 발굴하고 보존하며 알리고 즐기셨던 분이 마지막까지 사셨던 장소다운 곳이다고대광실이 아닌 아주 작은 한옥의 앞뒤마당요기조기에 놓인 동자석상과 돌 탁자절구등 친근감이 드는 생활소품이자 예술품들서재격인 작은 방위의 현판에는 杜門卽是深山” (문만 닫으면 바로 깊은 산라는 휘호를 스스로 쓰시고 다른 방위에는 梅心舍” (매화와 같은 마음의 집-선비가 머무는 곳)를 걸었다혜곡선생의 처소에 비하면 만해 한용운의 처소였던 尋牛莊은 몰취미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삭막한 느낌이다아마 선사의 처소라서 선방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걸까수연산방은 상허 이태준이 자신의 수필집 무서록에 집을 짓게 된 배경과 과정집터의 내력을 기록한 곳이다마침 보수중이라 다음 기회에 보게 되었다.

  

우리의 문화유산을 둘러보며 자연 45년 세계대전 이후 세상을 휩쓰는 아메리카나이제이션을 생각하다청바지코크햄버거 등으로 상징되는 미국문화는 반미데모를 할지라도 청바지입고 코카콜라 마시며 해야 하는 세상을 만들었다이 지구상 누구도 이런 문화의 세례를 피해갈 수 없다예수와 그 제자들의 시대에 유럽은 지금의 아메리카나이제이션과 그 영향력 면에서 동일한 헬레니즘의 세례를 받았다해외여행 자유화의 바람을 타고 성지순례가 한창인데처음엔 이스라엘에 국한되더니 그리스도교에 대한 이해가 넓어졌는지 점차 로마그리스터어키등 헬레니즘 판도로 영역이 확대되는 추세다사도 바오로는 무슨 용기로 헬레니즘이 판치는 세상에서 그것도 그 중심지 아테네아레오파고에서 당시로서는 변방에 지나지 않는 낯선 곳에서 살다가 사형을 당한 한 젊은이의 죽음을 꺼낼 수 있었을까그 자신이 타르수스 출신으로 로마시민권을 가질 수 있을 만큼 헬레니즘에 정통할뿐더러가믈리엘 아래서 자기유산을 깊이 있게 배웠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을까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의 만남은 그 안에서 시작되고이 둘의 만남으로 새로운 비전과 창조적인 비천(飛天이 가능하지 않았을까?

  

대학생때 길을 찾는 중에 청량리 어느 곳에 있던 수도회를 물어물어 방문한 적이 있다막노동을 하며 하루 벌어 하루 스스로 밥을 지어 먹는 생활을 한다고 한다그때 든 생각은 나는 그럴 수도 없고그러고 싶지도 않다” 였다그런데 외국어 공부를 하고 있어 물었더니프랑스 파리로 수련을 받으러 간다고 한다웃기는 짬뽕 같은 이야기지만 청빈하기 위해서 돈이 참 많이 든다” 자신의 문화유산에 대한 지식과 자긍심이 없이 제 1세계로 그리스도교를 배우러 간다는 것은 청빈하기 위해 돈이 많이 드는 생활양식을 배우고 문화식민지가 되는 지름길이 아닌가!

  

승천축일봉덕사 신종속칭 에밀레종은 한 아이를 제물로 하여 소리가 온전해졌다는 전설이 있다그리고 그 종에는 飛天像이 부조되어 있다승천비천은 그 문화와 역사 속에 선교사보다 먼저 이미 와 계시는 하느님을 찾아내고 드러낼 때 시너지로서 나타나는 동력과 비전일수도 있다성지순례에 유익한 점이 하나 있다면자기 집 마당이 聖地임을 깨닫게 하는 것이라 한다去者必反이라 했으니 이제는 돌아갈 때다집으로!


박태원 가브리엘 C.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