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현축일

by 후박나무 posted Jan 05,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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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들어 연 이어 잔뜩 찌푸린 날씨 덕으로 고전하다. 미세먼지까지…….힘이 많이 드는 날에는 우이령 대신 목욕을 하고왔다. 간단히 라도 기록을 하지 않으면 마치 단기간에 여러 곳의 성지순례를 다녀온 사람처럼, 지난 일들은 서로 엉기고 번져 그 일이 언제 어디서 일어났는지 묘연하기 일쑤다. 솔이 생일과 파킨슨의 발병일자를 확인하려고 저널을 찾아 읽다. 솔이는 2012년 11월생, 나랑 같이 살기 시작한 것은 2013년 1월부터. 파킨슨 확진은 2015년 10월 말경, 강릉 아산병원에서다.

 

오늘 주님공현 대축일날 이솝의 우화중 두루미와 여우가 서로를 초대하여 골탕을 먹이는 이야기를 기억하다. 음식은 그에 걸맞은 그릇에 담겨야 시너지 효과가 있다. 내용과 그것을 표현하는 형식 혹은 틀은 그래서 중요하다. 처음으로 내용과 그 표현양식인 형식이 상호간에 미치는 큰 영향에 대해 의식하게 된 것은 안동의 하회마음을 방문했을 때부터다. 사대부의 까칠하고 절제된 정신이 한옥에 잘 반영된 듯하였다. 또한 건물의 단정함은 거기서 생활하는 이들의 마음에도 영향을 미치리라.

 

동방박사의 방문이라는 틀에 담긴 내용, 음식은 무엇일까? 누구든지 자신의 마음속 깊이 원하는 바를 추구한다면, 그것은 결국 그 사람을 하느님께로 인도할 것이며, 그 하느님은 예수라는 인간에게서 온전히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는 신앙고백이 아닐까? 물론 하고많은 사람들이 처음에 가졌던 그 아련한 동경, 별을 잊고 살지만…….

 

세 명의 동방박사에 더해 ‘넷째왕의 전설’ 은 예수를 진정으로 세상에 데뷔케 한다. 십자가에 달린 사람을 알아보는 사람은, 그 자신도 비슷한 삶을 살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안 매큐언의 소설 Children Act 에 인용된 예이츠의 시 Down by the Sally Garden 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강둑에 풀이 자라듯 자연스럽게 삶을 받아들이라고

나무에 나뭇잎이 돋듯이 자연스럽게 사랑을 받아들이라고

그러나 나는 젊었고 어리석어 말을 듣지 않았다고!

 

삶을 받아들이고, 사랑을 받아들이는 일이 그리 간단하고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렇게 할 때 우리는 비로소 세상에 데뷔하는 것 일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