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간 화요일이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대유행으로 말미암아 교회도 거의 초유의 사태를 맞고 있다. 바이러스의 확산을 막기 위한 사회적 거리 유지를 위해 교우들과의 미사는 물론이고 다가오는 부활절 미사도 기껏해야 온라인으로 치러질 것 같다. 살아생전 나에게 사람은 상황에 따라 능소능대(能小能大) 할 줄 알아야 한다던 로사 씨가 떠오른다. 모든 것은 변하고 지나가기 마련이다. 그렇게 변하고 지나가는 것들의 한 가운데서 능소능대하려면 영원한 생명이라 일컫는 상태 혹은 존재와의 돈독한 관계가 필수적이다.
오늘 독서의 이사야서와 요한의 예수는 성직자나 수도자로 사노라면 결코 피할 수 없는 삶의 정황이랄까 낯설지 않은 체험을 복기(復棋)케 한다. 살아오면서 몇 번이나 이사야와 같은 탄식을 하였을까? “나는 쓸데없이 고생만 하였다. 허무하고 허망한 것에 내 힘을 다 써 버렸다. 그러나 내 권리는 나의 주님께 있고, 내 보상은 나의 하느님께 있다.”
만일 예수가 제자들의 말을 액면 그대로 믿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 제자들은 모두 뿔뿔이 흩어져 도망가고 홀로 매달려 죽어가던 예수의 절망은 훨씬 더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다. 다행히 예수는 제자들을 알았다. 그들의 희망사항뿐 아니라 현실적인 힘을 알았던 예수는 “지금은 내가 가는 곳에 너희는 올 수 없다.” 고 한다. 이의를 제기하는 시몬 베드로에게 “내가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올 수 없다. 그러나 나중에는 따라오게 될 것이다.” 하신다.
이렇듯 제자들에 대한 예수의 기대나 신뢰는 막연한 희망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 철저히 제자들을 파악하고 현실에 입각한 것이다. 별 근거도 없이 반복적으로 wishful thinking을 현실과 혼동하고 그에 따른 당연한 결과에 실망하는 우리들이 자주 돌아봐야 할 귀감(龜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