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어 신약성경의 문법 중에 대단히 의미심장한 “거룩한 수동태(受動態)” 라는 것이 있다. 일어난 모든 일의 배후(背後)에는 하느님의 뜻이 있다는 정도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수도회 창립자, 십자가의 성. 바오로 version 으로는 “무엇이든 하느님의 손에서 직접 받으라.” 가 되겠다. 누구 때문에, 무엇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 하며 근인(近因)적, 원인(遠因)적 까닭을 찾을 수는 있겠으나 궁극적으로 모든 일은 하느님의 손안에서 벌어지기 때문이겠다.
신앙이라든가 현실의 모든 일이 그러하듯, 이것을 실제생활에 적용하여 그렇게 믿고 행동하기가 간단하지 않다. 무엇보다 장애가 되는 것은 너무도 오랜 세월 길이 들었던 방식, 하느님이 모든 것을 안배하신다는 것에 대한 불신에 마음이 속속들이 물들어 있기에 그러하다.
깨어있지 않으면 마음은 자동으로 옛 습성으로 돌아가 있다고 간주해도 무방하다. 그러기에 끊임없이 기도하라 하고, 이름 없는 러시아의 순례자를 비롯하여 마음의 침묵을 배우고자 하는 많은 불자들은 끊임없이 “주 예수 그리스도님,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혹은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을 외우며 흐트러진 마음을 모아 평상심을 회복한다. 신심일여(身心一如), 이런 평상심에 머물 수 있을때 고사성어도 의미를 되찾는다.
道心靜似山藏玉 書味淸於水養魚-도심정사산장옥 서미청어수양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