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日是好日

2021.05.03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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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한숨도 못자서인지 어제는 9시쯤 곯아떨어져 눈을 떠보니 새벽 2시 반이었다. 오랜만에 길게 자서 몸과 마음이 개운하다. 날이 밝아올 때 차고에 가 길냥이들에게 아침을 주고는 가볍게 수도원 주변을 걷다. 그렇게 천천히 걷다 생각지도 못한 선물을 받았다. 예전 같으면 향을 통해 알 것을 이젠 파킨슨 증후군으로 후각기능을 거의 상실하여 보고서야 안다. 후박나무가 흰 꽃을 피어낸 것이다. 그렇지! 5월이면 라일락과 아카시아 향속에 유난히 멀리 가던 후박나무 꽃향기를 좋아했는데! 아마도 주변에 후박나무 향이 가득하리라.

 

구스타프 융이 처음으로 쓴 대중적인 심리서인 “인간과 그의 상징”에서 그는 무의식을 이렇게 설명한다. 어느 교수가 산책을 하다가 이제껏 살아오면서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던 어린 시절의 일이 떠올라 회상하게 된다. 그일이 있은 후 단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 왜 지금 느닷없이 생각이 난 것일까? 의문을 가진 교수는 그 산책길을 다시 걸어보며 숙고했다. 교수가 찾은 답은 산책길에 있던 거위농장이었다. 거위 배설물의 독특한 냄새가 그와 결부된 옛일을 생생히 재생한 것이다. 이처럼 무의식이란 연극무대에 비치되어있는 여러 가지 가구나 의자, 테이블등과 같다. 조명을 받지 않은 상태에선 보이지 않으나 없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사장된 기억에 의식이라는 조명이 비출 때 무의식은 의식의 장으로 나오게 된다.

 

미사들어가기 전에 알함브라궁전의 추억을 듣다가 쉘브르의 우산으로 이어진 기억은 다시 돌아가신 박도세 신부님을 소환하다. 같이 영화 ‘쉘부르의 우산’을 보던 추억이…….기껏해야 70, 근력이 좋아서야 80인 우리의 삶은 유한하고 인생이란 자기 뜻과는 무관하게 흘러갈 수 있음을 잘 알기에 우리들은 지키지도 못할 영원한 약속에 목을 매는가보다. 종교도 일종의 운수업이란 말이 있다. 사람을 이곳에서 저곳으로, 차안에서 피안으로 옮겨놓기 때문이다. 지금 머물고 고착되어 있는 곳에서는 상호 충돌이나, 모순밖에 있을 수 없지만 2차원의 세계에서 3차원으로 이동할 수 있다면, 우리의 시야가 제 3의 눈을 뜨게 된다면 영원이란 것도 가능해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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