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日是好日

2023.03.16 13:22

삶의 무대인 환경

조회 수 276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일일시호일 난에 마지막으로 글을 올린지가 언제인지도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그동안 별로 파란만장할 것도 없는 환자생활이지만 삶이 늘 그렇듯 우여곡절은 항상 그렇듯 있게 마련이다. 솔이를 마지막으로 본지도 일 년이 넘어가기에 몸 상태는 영 아닌데도 나아질 기미가 없어 더 늦기 전에 억지로 다녀오다. 고마운 봉사자의 도움으로 내가 양양 수도원까지 가고 솔이도 차를 타고 강릉 경포에서 수도원으로 와서 만나다. 내 형편을 아는지 달려들지 않고 가만히 손을 핥다가는 얼굴을 내 몸에 비빈다. 그렇게 내가 다녀간 날에는 솔이가 시무룩해져 저녁도 안 먹고 집에 들어가 안 나온단다.

 

36년 전, 1987년 2월 21일, 서울 명상의 집에서 강우일 주교로부터 사제서품을 받다. 지금 늙고 병든 몸으로 당시의 사진을 보니 딴 사람 같다. 10년을 더 산다면 지금의 모습이 또 그렇겠지!

 

동방정교회에서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를 가장 큰 축일로 여기듯, 그만큼 사람의 외모의 변화는 심원한 내적변화를 전제로 한다. 마르코 복음사가는 이 과정을 벳사이다의 소경이야기로 시작하여 예리고의 바르티매오라는 거지소경의 이야기로 마무리한다.

 

사람이 변하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確證偏向, confirmation bias, 때문이다. 확증편향이란 자신의 견해 또는 주장에 도움이 되는 정보만(그것의 사실 여부를 떠나) 선택적으로 취하고, 자신이 믿고 싶지 않은 정보는 의도적으로 외면하는 성향을 말한다. 다른 말로 자기중심적 왜곡(myside bias)이라 부르기도 한다. 쉽게 말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보편적 현상이다.

 

삶이 변화하려면 가치관이나 세계관이 변해 이제껏 하지 않던 다른 행동양식을 통해 새로운 체험을 해야 하는데, 늘 같은 정보만 접하며 기존의 가치관에 부합하는 것만 택하다 보니 새로운 체험을 통한 새로운 가치에 대한 깨달음은 없고 자기도 모르게 고루한 과거에만 매달리게 되어 필요이상으로 완고한 괴물이 되고 만다.

 

예수가 베싸이다의 소경을 치유하는 과정을 보면 사람들이 눈먼 이를 데리고 와서 그에게 손을 대어 주십사고 청한다. 예수는 그 눈먼 이의 손을 잡아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셔서, 그의 두 눈에 침을 바르시고, 그에게 손을 얹으신 다음, “무엇이 보이느냐?”하고 물으셨다. “사람들이 보입니다. 그런데 걸어 다니는 나무처럼 보입니다.” 그분께서는 다시 그의 두 눈에 손을 엇으시니 그가 똑똑히 보게 되었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집으로 보내시면서, “저 마을로는 들어가지 마라” 하고 말씀하셨다. 마르코 8:22~26의 본문에서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예수가 어떤 조치를 취하기 전에 먼저 그를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셨다는 보고다. 즉 삶의 환경을 바꾼 것이다.

 

돌아보면 파킨슨으로 진단이 내려진 그날부터 나는 싫든 좋든, 이제껏 살아왔던 마을에서 추방당한 모양새 이었다. 모든 것이 서툴고 답답하고 쉽게 무의미에 좌절하는 시간을 통해 이제껏 내가 살아왔던 마을의 모습에 눈을 뜨게 되고, 이제껏 전혀 용인하지 않았던 무의미나 열등한 가치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진다.

 

이사야 42:16 그러나 나는 낯선 길 가는 소경의 손을 잡아주고, 가본 적 없는 오솔길을 살펴주어, 캄캄하던 앞길을 환히 트이게 하리라. 험한 길은 탄탄대로가 되게 하리라. 나는 이 일을 이루고야 말리라. 결코 중단하지 아니하리라. “

 

이러한 역전이 십자가의 역설이다. 고난을 겪고 병고를 아는 이들만이 인정할 수 있는 가치가 있다. 그 가치는 진정 체험치 못한 이들에게는 십자가의 어리석음에 지나지 않는다. 벳사이다의 소경이나 예리고의 바르티매오처럼 눈을 뜬 사람만이 십자가 아래에 머무르게 된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58 조크 1 후박나무 2024.02.29 137
257 Lacuna! 후박나무 2024.02.27 116
256 남으로 창을 내겠소 후박나무 2024.02.26 105
255 JOHANNES TAULER CHRISTMAS SERMON 1 후박나무 2023.12.25 284
254 Nudos amat eremos [The desert loves to strip bare] 후박나무 2023.12.15 330
253 야훼의 종의 노래 후박나무 2023.09.19 279
252 "악의 평범성" 후박나무 2023.09.17 261
251 "소슬바람", 성. 십자가 현양축일! 후박나무 2023.09.14 169
250 화려한 십자가, 실망한 예수! 후박나무 2023.08.19 188
249 침묵의 봄 후박나무 2023.05.20 401
248 예수님의 옷자락 후박나무 2023.05.14 284
247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의 기도 후박나무 2023.05.07 480
246 엠마오 이야기 후박나무 2023.04.24 277
245 부활의 의미! 후박나무 2023.04.20 223
244 성.금요일 후박나무 2023.04.07 202
243 성모 영보 대축일! 후박나무 2023.03.25 221
» 삶의 무대인 환경 후박나무 2023.03.16 276
241 서품일 후박나무 2023.02.21 300
240 낙상! 후박나무 2023.02.14 267
239 축성생활 후박나무 2023.02.03 257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13 Next
/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