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었던 겨울의 찬 기운이 가시면서 생강나무나 산수유의 노란 꽃을 필두로 진달래, 개나리, 철쭉, 목련, 수선화 등 나름 순서대로 피던 꽃들이 올해는 유난히 별 시차 없이 한꺼번에 피었다 졌다. 각 식물마다 꽃을 피어내기 위한 준비도 다르겠고, 필요 충분조건도 다르기에 저마다 고유한 시간이 필요할것은 자명하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고유한 꽃향기의 상실” 을 시대의 징표라 해도 될 것 같다.
그래서 그런가. 예전에는 아카시아가 만발한 길에서 멀리 떨어진 길을 걸어도 바람결에 실려와 온몸을 감싸던 달콤한 향이, 바로 나무 곁에 가도 나지를 않는다. 아카시아만 그런 게 아니라 은은하게 멀리까지 가던 후박꽃 향기, 등나무나 오동나무 꽃향기도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살충제의 독성으로 새가 사라진 상황을 레이첼 카슨은 “침묵의 봄” 이라 했다. 온갖 꽃들의 고유한 향이 사라지고 있는 현실은 또 다른 형태의 “침묵의 봄” 이 되어가고 있다 할 수 있다. 꽃나무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은 인간세상에서 결코 일어날 수 없는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니 자신만의 고유한 향기없이 겉모습만 모방한 화려한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겠는가!
꽃나무들이 자신만의 고유한 향을 내기 위해서 거쳐야하는 과정이 있듯이, 사람도 그러하리라!
Memoria Passion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