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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성희 모니카(서울 글방 )

 

아들이 초등 1학년 때 짝꿍이 다쳤다는 담임의 연락을 받았다.

공교롭게도 담임은 짝꿍인 아이가 산만해서 부주의로 다친 것이지

아들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하면서,

그래도 다친 아이 엄마가 속상할 테니

통화를 하게 되면 잘 받아주라는 것이었다.

담임으로부터 전후 사정을 들은 나는 아들의 ‘무죄’를 확신했고,

아이 엄마의 전화를 받았을 때 당연히 사과를 하지 않았다.

‘미안하다’고 말하는 순간 아들의 잘못을 인정하는 꼴이 되고,

병원비를 물어줘야 하며,

무엇보다도 내 아들이 짝꿍에게 용서를 빌어야 하니 옳지 않다고 판단했었다.

 

어느 해 겨울, 길거리에서 붕어빵을 살 때 일이다.

2천원 어치부터 판다는 말에 발끈하여

‘포장마차 주제에 달라는 대로 주면 되지 그런 게 어딨냐’는 식으로

(틀림없이 그런 뉘앙스였을 것이다) 대거리를 했다.

붕어빵을 먹기는커녕 뒤통수에 잔뜩 욕을 매달고 돌아오던,

나는 아직도 그 길 위에 있다.

 

사순이다.

2천년 전 ‘빌라도 통치 아래’ 살았다면 나는 어떤 태도를 취했을까.

두말 할 필요 없이 예수를 죽이는 쪽에 가담했을 것이다.

로마인 빌라도에게 유대 사회를 시끌벅적하게 하는 예수가

처음부터 정치적 부담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유대 사회가 예수로 인해 분열되고

빌라도의 통치 능력이 심판받는 지경에 이르면

예수가 어떤 죄를 지었는지는 중요하지 않게 된다.

설혹 매력적인 이방인 청년에게 인간적인 호기심을 가졌더라도

군중들을 달래기 위해 내어놓지 못할 만큼은 아니며,

이방인은 이방인일 따름이다.

 

유다인이라면?

나 역시 열혈당원 바라빠를 살려내라고 했겠다.

예수는 겨우 유대 사회 지도자들을 향해 독설을 퍼붓거나

예루살렘 성전의 상인들을 위협했지만 로마에 대해서는 침묵했다.

예수의 총구는 유대 내부를 향해 있었고,

바라빠의 총구는 로마를 향한 것처럼 보인다.

똘똘 뭉쳐 있는 유대인들의 결속을 흩뜨리고

공공의 적 앞에서 대오를 망가뜨리는 이가 있다면

정의의 이름으로 희생을 요구할 수 있지 않은가.

 

나는 여전히 ‘빌라도 통치 아래’ 살고 있다.

우리의 죄보다 나의 죄에 훨씬 더 민감하다.

우리를 살리는 일보다 나를 살리는 일이 당연히 우선이다.

내면의 평화를 위해서라면 바깥 세상에 대한 관심을 꺼두어도 좋다고 한다.

심지어는 나만의 방에 틀어 앉아 손을 씻기만 하면 된다.

그러다가 잠들기 일쑤다.

이런 와중에 누군가가 ‘고난 받으시고 돌아가시고 묻히시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나는 죄가 없다고 말한다. 어떻게 살 것인가.

무엇을 할 것인가. 최소한 무엇을 하지 않을 것인가.

 

초등학교 내내 다친 아이의 엄마와 어색했다.

그 아이가 내 아들보다 공부를 잘한다니 그나마 다행인가.

길거리 음식을 파는 아주머니들의 표정을 살피는 것도 버릇이 됐다.

지금에 와서는 다소 사나운 표정에는

저절로 발길을 돌리는 것이 더 문제라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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