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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22 09:34

바다와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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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가 멋져 보일 때가 있다.

수 백 척의 어선들이 고된 조업을 마치고 돌아와 쉬는 북항과

거대한 화물선들이 대양으로 나아가기 위해

숨을 고르며 출항을 준비하는 신항을 길게 뻗은 대교가 이어준다.

대교를 지날 때 차창으로 내려다보이는 넓고 푸른 바다는

햇빛에 반사되는 물빛을 비춘다.

침묵하고 있는 고요하고 잔잔한 바다가 아름답다.

 

바다는 서로 멀지 않은 곳에 흩어져 있는 섬들을 에두르며 흐르기 때문에

섬 사람들의 삶을 가까이서 지켜보고 있다.

그 동안 아무 일 없었던 듯 아무렇지 않는 듯 평온한 얼굴을 하고 있는 이 바다에서

죽음과 상실과 분노로 고통 받았던 내 이웃의 이야기를 나와 바다는 알고 있다.

어제 귀항 길, 풍랑에 흔들리고 짙은 안개에 갇혀 헤매었지만

오늘 또 잔잔한 바다의 물살을 가르며 당당히 출항한다.

어제가 어떠했든 오늘을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대교 저 너머에 만신창이가 된 세월호가 처량하게 누워있다.

거칠고 어두운 깊은 바닥에서 들어 올려져 이곳으로 오던  날,

바다는 잔잔하게 맞아 주었다.

대교가 개통된 직후 몇 달 동안 여러 사람이 연이어 이곳에서 스스로 삶을 포기했다.

해가 뜨지 않은 이른 새벽, 만선으로 대교를 통과하던 이웃 부부가  귀항 하지 못했다.

그 후 오랫동안 부부의 어물전은 텅 빈 채로 굳게 닫혀있었다.

사람들의 아픔을 바다는 무기력하게 바라봐야 했다.

언제나 ‘네 탓이라’ 원망 듣는 바다가 측은하다.

 

차창을 내리면 바다의 짠 냄새가 바람에 섞여 밀려온다.

구름과 맞닿은 수평선 너머 검푸른 대양에서는 맡을 수 없는 갯벌의 짠 냄새다.

끈적끈적한 짠 내음에서 바다가 건장히 살아있음을 느낀다.

어제의 슬픔을 깊은 곳에 남겨두고 아무 일 없는 듯

오늘 또 섬 사이를 에둘러 흐르는 바다의 삶이,

우리의 세상살이를 닮았다. 

 

박신영 엘리사벳(광주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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