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양우철 유스티노)

    

                                                         민혜선 소화데레사 (서울 글방)

등산화에 아이젠을 끼우고 겨울 산에 올랐다.

두툼한 복장에 스틱까지 나름 만반의 채비를 차렸다.

익숙지 않은 산행에 눈 덮인 길마저 미끄러워

내딛는 한걸음 한걸음이 조심스러웠다.

한참을 발밑만 보며 걷다가 고개를 들어 사방을 둘러보았다.

 

그제야 흰 빛을 품은 겨울 산의 우아함이 눈에 들어왔다.

나무마다 살포시 내려앉아 벚꽃마냥 흐드러지게 핀 눈꽃,

분주하던 산의 소리를 덮어버린 하얀 침묵과 청아한 하늘빛,

길 위에 우뚝 선 내 다리와 차가운 공기 중에 흩어지는 가쁜 숨.

나는 또 바쁘게만 걸어갔구나.

나에게 주어진 것들을 즐기지 못한 채 넘어질까 조바심 내며 걸었구나.

 

지금 내가 살아가는 모습도 이와 비슷하다.

넘어지지 않기 위해 실수하지 않기 위해 내 발밑만 보며 걷다가

오히려 주변의 좋은 것들을 알지 못한 채 스쳐지나가기도 한다.

나의 삶은 산행과 달라서 해지기 전에 내려오려고 서두를 필요가 없는데

뭐가 급한지 조바심을 친다.

 

문득, 고개를 들어 겨울 산의 아름다움을 만났듯

온갖 망상에서 깨어나 있는 그대로의 나임을 바라보고

나를 존재하게 해주신 하느님께 속에서 우러나오는 감사와 찬미를 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