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함을 반납하며

by mulgogi posted Apr 23,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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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금초 글라라(서울 글방)

 

편하게 살다 가기를 원했다.

편하게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잘 살아 보려고 노력해온 것을 보셨으니 알고 계신다고 생각했다.

일을 조금씩 줄이고 싶어 본당일도 웬만하면 피해 보려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일을 주셨다. 왜 자꾸 주실까.

거부 할 이유도 없애놓으셨다.

살아 움직일 때 일을 하며 살아야 한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겁이 난다.

‘편하게 살기엔 인생이 너무 짧다.’

사제님 말씀처럼 정말 짧고 빨리 가는 게 세월이었다.

어느새 거울 앞에 오래 앉아 있어도 되는 나이가 되었다.

 

아침이면 번개 불에 콩 볶아 먹듯 휘파람 날리며

화들짝 가방 메고 출근길을 재촉했다.

새벽부터 일어나 집에서 건 직장에서 건 앉아 있을 틈 없이 하루가 간다.

언제쯤이면 느긋하게 거울 앞에 오래 앉아 볼까 했는데 순식간에 앉혀 주셨다.

느리게 살아야 할 세월이 가까워 간다.

생기 넘친 봄이 좋아지고, 재롱 섞인 손자들이 내 자식보다 예쁘다.

뒷산에 작은 새의 움직임이 왜 그리 귀여운지.

나이 탓이라고 한다. 모든 세상 미물들이 사랑스럽고 예쁘다.

이 시간들도 한때려니 한다.

꽃샘바람이 유난히 산 벚꽃을 흔들어 댄다.

편하게 서 있지만 말고 열심히 물줄기를 가는 가지까지

얼른 퍼 올리라고 재촉하듯 사정없이 흔들어 댄다.

눈처럼 내리는 꽃잎들이 공중에서 센 바람과 함께 왈츠를 춘다.

 

숫자에 불과한 나이를 세지 말고 이젠 산수(傘壽)까지 중년이란다.

주님이 말씀하신다. “너 어디 있느냐?” 부르신다.

와사보생(臥死步生)의 길을 택해라.

움직이라 하신다.

세상에서 헛되이 움직이며 헛것을 쫓지 말고,

본당의 일을 순명으로 받아 안아라 하시니.

‘움직여 성경을 집어라. 그리고 함께 나누어라‘ 하신다.

언제나 신께서 인간에게 좋은 것을 주셨지.

해치는 것을 주신 적 있었나.

내 스스로 일 벌려 놓고 가슴 치는 일 많았지.

물어 보고 해 본적 없어서 혼 줄이 많이 나기도 한다.

 

거울 앞에 앉아 나를 보며 차분하게 계획을 세워 본다.

편함을 반납해도 될 나이인가 보다.

여유롭게 유유자적하며 살아간들 세월의 흐름은 같을 진데.

움직이며 내게 주어진 일에 신중한 성실을 앞세우자고 다짐해 본다.

나를 성화시켜 가는 모습을 보여야 할 때가 되었다.

주님께 이 모습을 보고 드리며 살기로 하자.

할 일이 있다는 것, 건강을 지금까지 주신 것에 감사하며 살자.

1퍼센트의 선행이라도 있다면 하느님께서 기억해 주신단다.

인간은 기쁘게 살라 하신다.

99퍼센트는 부끄럽고 죄의 덩어리라 해도 정화시키는 방법을 제시해 주셨단다.

기도와 선행과 봉사 그리고 사랑을 하며 자신을 정화시켜 가라 하신다.

양파 한 뿌리만큼의 선행이라도 기억해 주시는 주님이시다.

너무 큰 사랑에 작은 봄꽃처럼 내게 주어진 일을 님을 향해 피어내자.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