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제2주간 토요일

by 언제나 posted Mar 23,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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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은 다음 사순제4주일에도 다시 듣게 될 것입니다.

지난 2년전 저의 안식년을 시작하면서 저는 제 버킷 리스트의 첫 번째 여행지인 상뜨페데르부르크 에르미타주 박물관의 렘브란트의 저 유명한 <돌아온 탕자> 그림 앞에 오래도록 머물렀던 순간이 다시금 되살아납니다.

마치 제 자신이 그 그림의 작은 아들처럼 눈도 멀고 몸도 마음도 지친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눈물 흘리면서 <아빠 이제야 돌아왔습니다.>고 수 없이 반복했었습니다. 은총의 순간이었고 그래서 이 성서가 제겐 마치 저의 이야기처럼 느껴집니다.

복음의 소제목이 <탕자의 비유>에서 <되찾은 아들의 비유>로 바뀜이 더 편하고 따뜻하게 다가옵니다. 이는 곧 아버지의 자비의 시선에서 보는 것이지요.

 

미카서의 <당신의 소유인 남은 자의 죄를 못 본 체 해주시고, 허물을 용서해 주시고, 허물을 기꺼이 자비를 베푸시는 분이시다.>(7,18)는 표현에서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또한 화답송의 <끝까지 캐묻지 않으시고, 끝끝내 화를 품지 않으시네. 우리의 죄대로 다루지 않으시고, 우리의 잘못대로 갚지 않으시네.>(시103,9-10)에서도 다시 반향되어 울려 퍼집니다.

 

그러기에 복음의 <어서 가장 좋은 옷을 가져다 입히고 손에 반지를 끼우고 발에 신발을 신겨주어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아라. 먹고 즐기자, 나의 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도로 찾았다.>(LK15,22-24)는 말씀에 드러난 아버지의 기쁨과 환희가 미어지도록 마음을 흔들어 깨워 영혼의 등뼈가 춤을 추게 합니다. <자비하신 하느님께서는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이 아니라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기뻐하십니다.>(15,7)

아! 주님의 자비는 한없이 크시며, 주님의 집에 잔치는 얼마나 큰 기쁨으로 넘쳐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