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5주간 토요일

by 언제나 posted Jul 20,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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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어제 자신의 제자들의 배고픔에서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배고픔과 힘듦을 꿰뚫어보시고 <정녕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는 호세아 예언자의 음성을 통해서 진정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바가 무엇인지를 밝히셨습니다.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것은 희생제물이 아니라 자비입니다. 하느님의 자비의 시선에서 우리는 우리의 신앙생활을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어제 말씀 나눔의 말미에서 언급했듯이 <하느님은 거룩하신 분이냐 아니면 자비로우신 분이냐는 문제가 아니라 > 우리가 어떤 하느님에 관한 이미지를 갖고 사느냐가 중요하다는

점입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세상에 제시하시는 새로운 통찰이자 비전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오늘 복음에서 바리사이들의 <예수님을 없앨까 모의>(Mt12,14)하는 모습은 결코 놀랍거나 충격적인 일이 아닙니다. 단지 그들이 예수님으로부터 많은 군중들 앞에서 무안을 당해서만은 아니라고 보며 더 근본적인 것은 그들이 살아온 신앙의 토대, 율법의 근간을 예수님께서 송두리째 흔들어 버리는 충격에 따른 반사작용인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존재의 위기 상황이며, 지금껏 누려온 기득권 등 모든 것을 포기해야만 하는 실존적인 상황에서부터 반발과 거부 그리고 제거의 음모가 시작된 것입니다. 이런 일이 어디 예수님 당대만의 문제라고 여러분은 느끼십니까? 지금도 예전과 동일하게 예수와 또 다른 예수를 없애 버리려고 모의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우리의, 세상의 어두운 면을 봅니다. 이것을 보는 것 자체로 부끄럽고 안타깝습니다. 허나 우리는 직시해야 합니다. 우리 안에도 바리사이들과 같은 의식이 있고 체제의 위기를 만나면 공동선이라는 미명하에 집단적인 악으로 드러난다는 사실입니다. 진리를 찾는다고 말하면서 진리를 만나면 눈을 감고 고개를 돌려 보지 않고 못 본 척, 듣지 않은 척 외면하는 우리의 모습 말입니다. 이런 일이 반복되다보면 죄의 무감각이 일어나고, 죄의 무감각이 굳어지면 결국 힘없는 서민은 정책의 외곽지대로 밀려나고 희망은 사라질 수밖에 없으리라 봅니다.

 

이런 배경 하에서 복음은 그 해결책으로 이사야서의 하느님의 종을 통해서 희망의 불을 지피고 있다고 봅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바리사이들의 음모를 아시고 오히려 목자 없는 양과도 같은 그들 속으로, 그들과 함께 머물기 위해 물러나십니다. 당신의 때가 멀지 않았음을 아셨겠지요. 악과 선의 대치, 빛과 어둠의 대립 구도 속에서 하느님의 종으로써 예수님의 모습은 이 모든 현실 앞에서 거부하거나 도피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종처럼 <차분하고 순한 면>을 드러내십니다. <그는 다투지도 소리치지도 않으리니, 거리에서 아무도 그의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12,19:이42,2참조) 이는 시종여일하신 예수님의 삶의 태도입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사이들에게 자신의 옮음을 주장하면 주장할수록 오히려 반감을 불러일으키고, 그들의 옳지 않음을 변명하고 외치게 할 뿐이라는 자각에서 그들과 대적해서 싸우기보다는 뒤로 물러나시고, 당신에 관해 침묵하도록 함구령을 내리신 까닭을 우리가 깨닫고 배워야 하리라고 봅니다. 때론 침묵이 웅변 보다 더 강하다는 사실을, 아울러 하느님의 종의 자비롭고 선하신 모습에 빗대어 <그는 올바름을 승리로 이끌 때까지 부러진 갈대를 꺾지 않고 연기 나는 심지를 끄지 않으리니 민족들이 그의 이름에 희망을 걸리라.>(12,20.21;이42,3참조)는 예언을 통해 예수님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분명 주님께서는 우리 자신과 우리네 삶의 상태를 <부러진 갈대>로 보시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부러진 갈대를 바라보시듯 우리네 삶의 꺾인 희망과 처절한 질곡 같은 삶을 보시면서 측은한 마음이 드시고, 꺾인 무릎에 힘을 주시고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용기를 심어주시고 희망을 불러일으키시려는 마음이 잘 드러나고 있다고 봅니다. 우리 실망하거나 절망하지 말자고요. 삶이 힘들고 어려울 지라도 주저앉지 말고 힘을 내어 희망으로 일어섭시다. 주님은 결코 우리의 부러진 갈대를 꺾지 않으시고 다시금 희망으로 꼿꼿이 서 있기를 바라십니다. 주님만이 우리의 희망이십니다. <주님의 자애는 영원하시다.>(시13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