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성탄 대축일 밤 미사: 루카 2, 1 - 14

by 이보나 posted Dec 24,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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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혹시 대전시에서 조성한 ‘뿌리 공원’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 보셨습니까? 조상의 족보를 새겨 둔 공원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어린아이들의 산 교육 장소로 활용되고 있나 봅니다. 세상이 어렵고 힘들다 보니 우리의 마음도 고요함을 잃고 수많은 근심 걱정으로 마음이 산만하고 어둠으로 가득 차 있는 듯합니다. 세상도 그렇고 우리도 역시 내적 고요함을 잃은 지 오래되었습니다. 이는 모든 사람이 고향에서, 뿌리에서 너무 멀리 떠나와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오늘 복음을 들으면서 저는 성탄이란 무엇일까를 묵상하면서, 성탄이란 뿌리로, 고향으로 돌아가 잃었던 자신의 참모습을 되찾는 것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노자의 도덕경 16장 참조)

오늘 복음에 보면 요셉은 약혼녀 마리아와 함께 자신의 뿌리인 고향으로 되돌아갑니다. 마리아와 요셉은 뿌리로 되돌아가야 하는 우리의 모델입니다. 그들이 고향을 찾았을 때 그들의 마음은 한껏 평온함과 기대감으로 부풀어 있었지만, 상대적으로 고향은 준비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습니다. 그게 인간의 어두운 현실이요 세상의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희망 없이 어둠 속에서 현실에 안주하려는, 우리 역시 마찬가지가 아닌가요? 마리아와 요셉과 함께 우리 역시 잃었던 우리 자신을 되찾기 위해 묵은 자리에서 새로운 자리로 떠나야 합니다. 마리아와 요셉이 찾아간 뿌리는 단지 장소, 베틀레헴이 아닌 인격이었습니다. 그분들은 과거와의 연속성 안에서 어제의 뿌리로 되돌아가는 것이었지만, 실제적으로 마리아와 요셉을 통해서 우리가 찾아야 할 뿌리는 바로 자신들의 첫아들 예수였습니다. 오늘 밤, 어머니 마리아는 자신의 태를 열고 인간의 나약함과 한계를 지닌 채 아기로 태어나신 예수가 바로 모든 인간이 찾아 나가야 할 생명과 존재의 뿌리임을 세상을 향해 눕힙니다. 이제 모든 사람은 잃었던 자신들의 본래 모습을 아기 예수를 통해서 되찾게 될 것입니다. 생명의 존귀함을 되찾는 것이 인간 구원의 시작이며, 생명의 충만함을 눌릴 수 있을 때 기쁜 소식, 복음은 시작됩니다. 

이제 말씀이 사람이 되심으로써 세상의 구원이 시작되었습니다. 자신을 스스로 방어할 수도 없고 아무런 무장도 하지 않은 어린 아기 예수님을 통해서 적대와 전쟁, 불의와 부정, 차별과 무시, 거짓과 속임으로 판치는 세상에 인간 본래의 참모습을 회복하는 길이 곧 구원이며 곧 성탄의 참뜻입니다. 이것이 하느님의 영광이고 인간의 평화입니다. 지금 여러분이 마음의 평화와 고요함으로 충만하다면 아무도 거절하지 않고 아무도 의심하지 않고 단지 무방비와 무방어 상태로 세상을 향해 자신의 전부를 내어 맡기신 아기 예수님을 만나셨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분과 만남으로 인한 은총의 결실입니다. 

첫 성탄이 그러하듯이 매번의 성탄은 우리에게 우리들의 뿌리인 아기 예수님을 향해 되돌아가도록 초대받는 날입니다. 성탄은 우리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회복하고 되찾은 날입니다. 자신을 잃어버리고서 서로 비교하고 경쟁하고 싸우고 시기하고 불평하고 불만하던 자신을 내려놓고 아기 예수님을 통해서 잃어버렸던 본래의 참모습으로 되돌아가고 되찾은 날입니다. 우리는 누구였으며 누구여야 하는가를 깨닫고, 예수님의 성탄으로 영적으로 새롭게 거듭나며, 新生의 기쁨을 만끽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이 은총이여, 이 복된 기쁨이여!!!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가져다주는 하느님의 은총이 나타났습니다.>(티2,11)라고 오늘 밤 사도 바오로는 강조하고 있습니다. 오늘 밤 나타나시고 드러나신 하느님의 무상성의 구원의 은총은 바로 구유에 누워 계신 아기 예수님이시고, 이분으로 말미암아 온 세상의 모든 사람은 제 모습을 되찾게 되었습니다. 고요함을 평화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으로 우리가 본래의 참모습을 되찾게 되었다면 어제와 다른 삶의 태도를 통해서 <불경한 생활과 세속적 욕심을 버려야>하고 새로운 마음과 새로운 생활 태도로 <현세에서 신중하고 의롭고 경건하게 살아가야>합니다.(티2,12참조) 그렇습니다. 성탄을 제 뿌리를 찾아 나선 사람들에게 주어진 기쁜 소식입니다. 무방비와 무방어의 아기 예수님께 겸손되이 무릎을 꿇고 경배하면서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2,14)를 노래하며 찬양합시다. 우리 역시 아기 예수님처럼 세상을 향해서 무방비와 무방어의 자세로 내어놓도록 합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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