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제4주간 월요일: 요한 10, 1 - 10

by 이보나 posted Apr 21,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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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문이다. 나는 양들의 문입니다.” (10,9.7)

저는 성당 門하면 생각나는 곳이 바로 L.A. 주교좌 성당의 문입니다. 성당의 한쪽은 대도시의 복잡한 도심이, 다른 한쪽은 도시를 관통하는 고속도로 옆에 주교좌 성당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당 문을 열고 들어서는 그 짧은 순간에 방문자는 침묵의 무게로 압도당합니다. 단지 문 하나로 외부와 차단된 그 공간 안에 꽉 찬 거룩함의 침묵과 고요는, 길게 숨을 쉬지 못하고 잘게 숨을 나눠 쉴 만큼, 엄숙하면서도 짙은 평화가 평온으로 인해 눈물을 쏟을 정도입니다. 단지 문 하나 밀치고 들어왔을 뿐인데, 대도시의 복잡함에서 갑자기 사막과 같은 고요와 침묵이 마음을 평안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곳을 방문한 여행객이나 기도하러 온 영혼들의 지친 몸과 마음을 어루만져 어머니의 가슴처럼 꼭 품어 안아 주는 느낌이 듭니다. 그곳이 바로 우리가 찾고 있고 갈망하던 영혼의 쉼터이며 안식처처럼 느꼈기에 L.A를 방문할 때마다 저는 주교좌 대성당을 찾아가곤 합니다. 

오래전 상영된 드라마 「스카이 캐슬」을 보면 ‘스카이 캐슬’로 들어가는 입·출구 대문이 화면에 자주 나옵니다. 위압감을 주는 크고 높은 대문은 이곳에 아무나 쉽게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아님을 쉽게 느끼게 해줍니다. 안과 밖의 세상을 구분 짓는 도구는 단지 대문 하나이지만, 이렇게 큰 대문은 이곳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신분을 그리고 높은 대문은 그 신분이 얼마나 높은가를 상징하는 장치로 다가오더군요. 참 불편했습니다.

오늘 복음에 보면 예수님은 당신 자신을 “나는 문이다. 나는 양들의 문입니다.” (10,9.7) 하고 자신의 ‘에고 에이미 정체성’을 밝히십니다. 문의 기능은 안팎을 구분 짓는 경계이자 통로입니다. 보통으로 대문의 한 면은 밖으로, 다른 한 면은 안으로 나 있는 것처럼, 주님의 문의 한 면은 땅 위에 있는 인간을 향해 있고, 다른 한 면은 하느님을 향해 있습니다. 주님의 문은 땅과 하늘, 육과 영, 어둠과 빛, 불안전과 안전, 죽음과 생명을 구분 지으며 동시에 밖에서 안으로 이끌어 주는 유일한 통로입니다. “양들의 문이신 주님을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구원을 받지 못하고 멸망할 것입니다.” 하지만 “누구든지 양들의 문이신 주님을 통하여 들어오면 구원을 받고, 또 드나들며 풀밭(=생명의 양식)을 찾아 얻을 것이다.” (10,9) 하고 단언하십니다. 예수님은 “목자 없는 양들” (마르6,34) 같고, “길 잃은 양” (루15,4)과 같은 이들을 찾아와 푸르고 싱싱한 초지가 조성된 생명의 목장으로 이끌어 그들이 “생명을 얻고 또(=더) 얻어 넘치게 하려고 오신 것”(10,10)입니다. 
 
주님은 양인 저희가 들어가는 문이며, 이 문을 통해 들어가면 안전하고 마음대로 생명의 양식인 풀을 먹을 수 있기에 생명을 생명으로 풍요롭게 누릴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십니다. 이 얼마나 아름답고 놀라운 생명과 사랑이 넘치는 목장으로 초대이며 기쁜 소식입니까? 누가 있어 우리를 이토록 잊지 않고 찾아오시고, 돌보아 주시며 이끌어 주시는 목자가 또 있겠습니까? 오직 주님뿐입니다. 우리 각자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 밖으로 데리고 나가시고 때론 안으로 데리고 들어오시기에 주님을 따라 어디든지 따를 수 있습니다.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어라. 푸른 풀밭에 나를 쉬게 하시고 잔잔한 물가로 나를 이끄시어 내 영혼에 생기를 돋우어 주시고 바른길로 나를 끌어 주시니 당신의 이름 때문이어라. 제가 비록 어둠의 골짜기를 간다하여도 재앙을 두려워하지 않으리니 당신께서 저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막대와 지팡이가 저에게 위안을 줍니다. 당신께서 저의 원수들 앞에서 저에게 상을 차려 주시고 제 머리에 향유를 발라 주시니 저의 술잔도 가득합니다. 저의 한 평생 모든 날에 호의와 자애만이 저를 따르리니 저는 일생토록 주님의 집에 사오리다.” (시2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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