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김준수 아오스딩 신부님의 묵상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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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어제 성탄 밤 미사 복음에 보면, 요셉은 약혼녀 마리아와 함께 고향 베들레헴으로 되돌아갑니다. 마리아와 요셉이 찾아간 뿌리는 단지 장소, 베들레헴이 아닌 인격이었습니다. 어머니 마리아는 자신의 태를 열고 인간의 나약함과 한계를 지닌 채 아기로 태어나신 예수가, 바로 모든 인간이 되돌아가야 할 뿌리임을 세상을 향하도록 누입니다. 이제 모든 사람은 잃었던 자기 본 모습을 아기 예수를 통해서 되찾게 될 것입니다. 생명의 존귀함을 되찾는 것이, 인간 구원의 시작이며 생명의 충만임을 성탄은 우리에게 선포하며, 이 기쁜 소식, 복음을 받아들이도록 초대합니다. 

첫 성탄이 그러하듯이 매번의 성탄은 우리로 하여 자신들의 뿌리인 아기 예수님을 향해 되돌아가도록 초대받는 날입니다. 성탄은 본향本鄕으로, 뿌리로 돌아감이며, 고향으로 돌아가 잃었던 자신의 참모습을 되찾는 것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본래의 참모습으로 돌아가라!’(도덕경, 16장 참조) 그때 비로소 비교하고 경쟁하고 싸우며, 시기하고 불평하고 불만하던 자신을 내려놓고 아기 예수님을 통해서 잃어버렸던 본래의 참모습으로 돌아가고 회복하는 날입니다. 우리는 누구이며 누구여야 하는가를 깨닫고, 예수님의 성탄으로 영적으로 새롭게 거듭나며, 신생의 기쁨을 만끽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오늘 선포된 요한복음의 핵심은 영원하신 하느님의 실재는 사랑이며 사랑의 말씀이다, 는 진리입니다. “한처음에 말씀이 계셨다.” (1,1) 그러니까 인간뿐만 아니라 생명으로 존재하는 모든 것의 기원, 뿌리는 하느님이시며, 하느님은 사랑의 말씀이며 생명의 말씀 이십니다. 그 말씀은 모든 시간의 시작과 동시에, 존재하는 모든 것의 기초가 되는 지배 원리 곧 생명의 원천이 바로 사랑입니다. 따라서 이 세상에 존재하는 우리는 우리 존재의 기원인 말씀으로부터 생명을, 사랑의 생명을 얻어야 합니다. 사랑과 생명의 말씀이 우리 존재의 뿌리라는 진리입니다. 그렇습니다. 영원한 진리를 알면 너그러워지고 하늘 같은 사람, 道와 같은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 (1,4)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생명을 얻는다는 것은 다른 말로 빛을 받는 것입니다. 빛이 없으면 모든 존재는 죽습니다. 빛은 곧 생명을 줍니다. 그 생명의 빛을 어디서 받을 수 있을까요? 사랑의 말씀에서 빛을 받는 것입니다. 사랑의 말씀을 모르면 내가 누구인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하면 행복하고 기쁜지를 알 수 없습니다. 사랑의 말씀인 그분을 주님으로 알아 모시는 우리는 사랑의 말씀인 그분을 통하여 내 삶의 의미를 깨닫고, 내 삶의 목적을 알고, 내 삶의 행복을 누릴 수 있기에 사랑의 기쁨이 충만해지고 은총과 진리로 살아가게 됩니다. 이것이 곧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사랑의 말씀 안에 살 때 우리는 생명을 얻고 또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사랑의 말씀은 우리네 삶의 의미와 삶의 보람 그리고 삶의 행복을 충만하게 하고 풍요롭게 해줍니다. 하지만 우리네 삶의 뿌리요 원리인 사랑의 말씀이 사람이 되셨지만, 세상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예수님을 맞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이미 새로운 사랑과 생명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지만, 상대적으로 고향은 준비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고향으로 되돌아갔지만, 고향엔 머물 자리가 없었습니다. 이것이 세상의 어두운 현실이요 세상의 상황입니다. 

여러분 안에는 사랑의 말씀인 주님께서 태어나실 자리는 준비되셨나요? 우리 자신들의 지난 신앙생활을 반성해 볼 때, 사랑의 말씀인 그분은 생명의 빛으로 이미 와 계셨고, 다시 오시고 계시지만 과거의 낡은 틀 속에, 어둠에 머물고 있기에 그분이 우리 안에 머물 자리가 없습니다.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지만, 어둠은 그를 깨닫지 못하였다.” (1,5)라는 복음 말씀처럼,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곧 우리의 삶이 아직도 짙은 어둠 속에 머물러 있기에 생명의 빛으로 오실 그분이 머물 자리가 없다, 는 현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몸에 깊이 배어있는 어둠의 무게와 습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는 곧 낡은 습성을 바꾸기를 싫어하고, 그런 상태를 바꾸지 못한 채, 우리는 주저하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에게는 모험을 꺼리는 두려움도 있습니다. 사랑은 두려움이 없다고 하잖아요. 사랑의 말씀이 우리와 함께 계심을 체험했다면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았을 텐데. 이처럼 우리는 이미 ‘은총에 은총’을 충만히 받았지만, 은총에 상응하는 진리를 살지 않기에 아직도 어둠 속에 살고 있습니다.

잃었던 본래의 우리 모습을 되찾기 위해 어두운 삶의 습성에서 벗어나 우리 존재의 뿌리인 사랑의 말씀, 생명의 빛인 예수님께 돌아가야 합니다. 비록 우리 지식이나 경험으로 아기 예수님을 통해서 드러난 하느님 생명의 신비, 사랑의 신비를 온전히 파악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사랑의 말씀인 예수님께 돌아가야 합니다. 그럴 때 사도 요한이 증언한 것처럼 “그분께서는 당신을 받아들이는 이들, 당신의 이름을 믿는 이에게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권한을 주셨습니다.”(1,12)라는 말씀대로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가 되고, 하느님에게서 난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물론 한 처음부터 우리는 하느님의 아들과 딸로 정해졌지만, 우리 스스로 이를 성취할 수 없고 실현할 수 없습니다. 다만 우리의 낡고 이기적인 자아를 버리고 은총과 진리의 선물인 예수님을 받아들임으로써 하느님의 자녀가 되어감을 잊지 맙시다. 오늘 사랑의 말씀이 사람이 되신 예수님을 통해 이러한 은총에 은총을 우리는 받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성탄은 단지 예수님이 태어나심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날만이 아닌 바로 우리 모두 새롭게 은총과 진리 안에서 새롭게 태어난 날이기도 합니다. 그러기에 주저함이 없이 우리 ‘은총과 진리의 원천’이며 뿌리인 구유에 누워계신 아기 예수님께 다가가서, 무릎 꿇어 경배하면서 하느님 아버지의 영광을 찬양합시다. 성탄이 우리에게 기쁨의 축일인 것은 아무도 하느님을 본 적은 없었지만, 말씀이 사람이 되신 예수님께서 ‘하느님을 알려 주셨기’ 때문입니다. 구약성서 욥기의 말을 빌리면, 우리가 이 세상에서 집착하고 욕심내는 것은 모두 “꽃처럼 피어났다가는 스러지고, 그림자처럼 덧없이 지나가는” (14,1~2) 것들입니다. 하느님은 그런 것들 안에 계시지 않습니다. 하느님은 베들레헴 외양간의 구유에 누운 어린 예수 안에 당신 자신을 드러내셨습니다. 그러기에 “그분의 충만함에서 우리 모두 은총에 은총을 받고” (1,16)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가 강물처럼 넘쳐나는 삶이 되기 위해, 우리 모두 우리 존재의 뿌리인 아기 예수님께 무릎 꿇고 경배합시다. “거룩한 날이 우리에게 밝았네. 민족들아, 어서 와 주님을 경배하여라. 오늘 큰 빛이 땅 위에 내린다. 알렐루야” (복음환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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