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김준수 아오스딩 신부님의 묵상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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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나와 함께 따로 외딴곳으로 가서 좀 쉬자.” (6,31)

실리콘 밸리에서부터 새롭게 시작한 스토아주의는 많은 이들에게 위로와 힘을 주고 있으며, 그 중심에 로마의 철인 황제로 알려진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입니다. 그의 명저인「명상록」에 오늘 복음의 의미를 일깨우는 이런 문장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시골이나 해변이나 산속에서 혼자 조용히 물러나 쉴 수 있는 곳을 갖기를 원하고, 너도 그런 곳을 무척 그리워하곤 한다. (중략) 사람이 모든 근심과 걱정에서 벗어나서 고요하고 평안하게 쉬기에는 자신의 정신보다 더 좋은 곳이 없다.』 

세상이란 넓은 곳에서 인생이란 험한 길을 걷는 사람에게 쉼터, 쉴 곳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삶의 지혜이며 선택입니다. 얼마 전 도쿄를 둘러보고 온 서울 시장 오세훈은 “사람이 쉴 수 있는 공개 용지가 없는 강남은 실패한 도시계획”이라고 강조하면서 서울 도심 대개조를 선언했더군요. 부디 자신이 선언한 대로 재건축, 재개발을 위한 빌미를 위한 대개조가 아니라 쉴 곳이 없는 대도시 안에 사람이 쉴 공간을 회복할 수 있기를 고대합니다. 조용하고 한적한 곳에서 깊은 침묵과 고독의 시간은 자신이 살아 온 삶을 되돌아보며 아직도 끝나지 않은 길을 다시 걷기 위한 재충전의 시간이며 안식의 자리 곧 영적 쉼터라고 생각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일상의 바쁨과 과도한 일로 음식조차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쉬지도 못해 몸도 마음도 지친 제자들을 보시고, 예수님께서 먼저 “너희는 나와 함께 따로 외딴곳으로 가서 좀 쉬어라.” (6,31)고 권고하시면 함께 쉴 수 있는 외딴곳으로 떠납니다. 이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참된 피정避靜의 가르침이며, 이 가르침을 토대로 저희 수도회 창립자이신 십자가의 성 바오로는 저희 예수고난회 수도자들이 사는 곳을 수도원monastery이 아닌 피정집retreat house이라 칭하였습니다. 피정이란 이렇게 일상의 삶의 자리에서 물러나 한적하고 조용한 침묵과 고독의 장소에서 예수님 안에서 예수님과 함께 영혼 육신이 편히 쉬는 것입니다. 이 침묵 속의 쉼이 바로 피정입니다. 피정은 우리로 하여금 하느님 앞에 멈추어 서게 하며, 하느님의 말씀을 들게 하고(=기도), 이로써 자신이 누구이며 어디로 가고 있으며 하느님의 자녀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 가를 깨닫게 합니다. 세상에서 떠나온 사람만이 떠나온 그곳으로 되돌아가서 하느님의 자녀로 자신을 통해 일하시는 하느님 구원의 도구와 친교의 연장으로 함께 사는 이들을 사랑하고 활력을 불어넣어 줄 것입니다. 특히 저희 우이동 명상의 집이나 오상영성원은 오늘 복음에서 예수께서 권유하신 외딴곳이며 참된 쉼, 休가 보장되는 장소입니다. 

쉴 곳이 없다고들 합니다. 물론 한적하고 고요한 곳으로 나갈 수만 있다면 이보다 더 바람직하고 좋을 수는 없겠지요. 하지만 많은 경우 단지 사람이 일상의 자리를 떠난다고 해서 참된 쉼을, 쉴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마치 오늘 복음에서 쉴 곳으로 떠난 예수님과 제자들 역시 마음먹고 쉴 곳으로 막상 떠났지만, 자신들이 기대한 것과는 달리 그곳에 또 다른 일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우리 역시도 한갓진 시골, 평안한 바닷가 숲, 조용한 산속에 혼자 있다고 우린 정말 쉴 수 있었으며 있을까요? 아직도 우리 마음에 두고 온 그곳과 사람들과 그리고 일들에 대한 근심과 걱정이 마음 한가득하다면, 특히 연락할 수 있고 어디서든지 정보를 검색할 수 있는 스마트 폰에서 온전히 벗어나지 못한다면, 그곳이 물러나 쉴 곳이며 참된 쉼일까요? 아우렐리우스가 우려한 것처럼, 가장 이성적으로 적합한 쉴 곳에 가더라도, 내 마음이 고요하지 않는다면 참 쉴 곳이 아니며 참으로 쉬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바라시는 참된 피정이나 아우렐리우스가 지적한 대로 내가 편안히 물러가 쉴 곳은 멀리 있는 곳이 아니라 기실 내 마음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외적 조건이나 자리는 단지 일차적인 이동이나 장소의 전환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기 마음으로 내적 여행이라는 점을 잊지 말길 바랍니다. 우리 각자의 마음이야말로 참된 쉴 곳입니다. “주님의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어라.” (시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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