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김준수 아오스딩 신부님의 묵상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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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낙심하는가? 『어떤 상황에도 은총은 가까이 있다.』는 책 표지에 쓰인 작은 문장이 저의 낙심하는 마음을 되잡도록 하였습니다. 가끔 삶에서 하느님의 은총을 의식하지 못함으로 제 마음이 허허虛虛했던 때였습니다. 날마다 주어지는 상황에 너무나 익숙해져 살다 보니 은총을 은총으로 여기지 못하고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더니 낙심인지 실망인지 분간조차 하지 못한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모르시는 우리 상황은 없습니다! 다만 하느님의 은총을 잊은 채, 하느님보다 내 뜻과 의지가 앞선 상황이었기 때문에 낙심하고 좌절한 것입니다. 너무나 쉽게 구원의 기쁨과 감동을 잊어버린 채 습관 같은 삶을 살다 보니 쉽게 낙심하는 저를 발견합니다. 십자가의 길, 십자가의 의미를 기억했다면, ‘십자가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보라’는 말씀을 기억했다면, 낙심이란 말을 쉽게 할 수 없었음을 부끄럽게 기억합니다. 우리와 항상 함께 현존하시는 하느님과 하느님의 은총을 기억한다면, 어떤 상황에도 낙심하거나 좌절할 수 없습니다. 하느님을 의식한다면 그 순간이 바로 가장 기도가 필요한 때입니다. 

낙심한다는 건 지극히 인간적이며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오히려 낙심하는 상태에서 우리의 도움이 누구에게서 오는지 자문해야 할 때입니다. 그때 “산들을 우러러 눈을 드노라 어디서 구원이 올런고 구원은 오리라 주님한테서 하늘 땅 만드신 그 님한테서”(시120,1~2)라는 시편 구절이, 우리의 기도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내 영혼아 어찌하여 시름에 잠겨있느냐 어찌하여 내 속에서 설레이느냐. 하느님께 바라라.”(42,5) 이렇게 낙심은 기도의 시간입니다. 우리의 도움이신 하느님께 희망하는 순간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낙심하지 말고 끊임없이 기도해야 한다는 뜻으로”(18,1)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하느님과 통하는 기도의 길을 보여 주십니다. 예수님은 이미 기도하는 법을 가르치신 바가 있기에 이 대목에서 특별한 기도의 비법이나, 하느님과 소통하는 신비한 기술을 언급하지 않으십니다. 어떤 누구에게서도 도움을 받을 수 없는 과부는 그 재판관에게 ‘올바른 판결을 내려 달라’고 집요하고 끈질기게 졸라대는 모습을 들려줍니다. 낙심하지 말고 집요하게 끊임없이 기도하라는 말씀입니다. 과부의 처지는 실상 제자들의 처지를 상징하고 있으며, 제자들에게 어떤 경우에서든 낙심하지 말고 하느님을 믿고 당신을 믿고 항구하고 집요하게 기도하라는 숨은 뜻과 더불어 우리에게 향한 가르침이기도 합니다. 

세상이 많이 변화되어 지금 세상은 때론 ‘과부 팔자가 상팔자다.’라고들 말합니다만, 예수님 당시의 과부는 참으로 가장 비참하고 가난한 부류였습니다. 사실 남성 중심의 세상에서 보호자인 남편이 없는 과부가 겪어야 할 상황은 참으로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그 과부는 이웃과 송사訟事에 휘말렸나 봅니다. 그래서 그녀는 그 송사를 맡은 재판관을 줄곧 찾아가서, “저와 저의 적대자 사이에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십시오.”(18,3)라고 졸랐나 봅니다. 비록 그 재판관이 ‘하느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18,2) 사람일지라도 그녀는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말처럼 그녀가 바라는 것은, 오직 올바른 판결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물불을 가리지 아니하고 그것에 몰두하고 몰입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 그녀의 간절함은 마침내 목석과도 같은 그 재판관의 마음을 움직였나 봅니다. 그래서 한동안 들어주려고 하지 않다가 마침내, “저 과부가 나를 이토록 귀찮게 하니 그에게는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어야겠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끝까지 찾아와서 나를 괴롭힐 것이다.”(18,5) 비록 그 재판관이 올바른 판결을 하게 된 까닭이 그녀에 대한 배려나 이해가 아니라 자신이 겪고 있고 겪을지 모르는 귀찮음과 괴롭힘에서 벗어나기 위한 처사였다고 해도 간절함과 집요함을 이길 사람은 없나 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벗이 늦은 밤에 찾아와서 찾아온 손님을 줄 빵 세 개만 꾸어 주라고 간청했을 때도, 그 집주인 또한 우정보다는 “그가 줄곧 졸라 대면 마침내 일어나서 그에게 필요한 만큼 다 줄 것이다.”(루11,8)는 말씀이 연상됩니다. 비유의 핵심은 ’끊임없이 간청하여라!‘

眼下無人이었던 지독하게 악하고 세속적인 재판장일지라도 끈질기게 탄원하는 과부에게 결국 그녀의 정당한 권리를 되찾아 주었습니다. 하물며 공의롭고 정의로우시며, 사랑과 자비가 풍성하신 하느님 아버지께서 어찌 끊임없이 밤낮으로 당신에게 부르짖는 당신의 선택된 자녀들의 기도를 응답하시지 않겠습니까? 반드시 응답해 주십니다. 그러니 ’낙심하지 말고 하느님께 기도하여라’는 것입니다. 이런 기도의 태도와 믿음이 필요한 때는 모든 날이겠지만, ”사람의 아들이 올 때“(18,8) 더 절실히 필요하다고 강조하십니다. 그래서 복음은 "그러나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 이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볼 수 있겠느냐?"(루 18,8)고 비유를 마치시면서 우리에게 심오한 질문을 던집니다. 이 질문에 대한 응답은 낙심의 순간마다 시편 화답송의 시편 기도자와 함께 믿음을 노래해야 합니다. 『주님은 너를 지키시는 분, 주님은 너의 그늘, 너의 오른쪽에 계신다. 낮에는 해도, 밤에는 달도 너를 해치지 못하리라. 주님은 모든 악에서 너를 지키신다. 그분은 너의 목숨 지켜 주신다. 나거나 들거나 주님께서 너를 지키신다, 이제부터 영원까지. 아멘』(시편 12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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