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김준수 아오스딩 신부님의 묵상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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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현의 「연어」 중에, 은빛 연어가 초록강에게, 『 “아저씨, 이유 없는 삶이 있을까요?”, “네 말대로 이유 없는 삶이란 없지. 이 세상 어디에도” “그럼 아저씨, 존재하는 이유는 뭔가요?” “그건 내가 지금, 여기 존재한다는 그 자체야.” “존재한다는 게 삶의 이유라고요?”, “그래! 존재한다는 것, 그것은 나 아닌 다른 존재들의 배경이 된다는 뜻이지”, “배경이란 뭐죠?”, “내가 지금 여기서 너를 감싸고 있는 것, 나는 지금 여기 있음으로 너의 배경이 되는 거야. ” 』 사람은 누구나 다른 사람의 배경으로 살아간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를 의식하지 못하고 깨닫지 못할 뿐입니다. 오늘 우리가 기억하고 기념하는 성 요셉은 자신의 존재 자체로 아내인 마리아와 아들 예수의 배경으로 사시다가 돌아가신 분이십니다. 그러기에 감사송에는 『아버지께서는 의로운 요셉을, 하느님의 어머니 동정 마리아의 배필로 삼으시고, 충실한 지혜로운 종 요셉을 성가정의 가장으로 세우시어, 성령으로 잉태되신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보살피게 하셨나이다.』라고 요셉의 존재 이유를 찬양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의 믿음을 의로움으로 인정해 주신 것처럼” (로4,22) 요셉이 의로운 사람이었다는 점은 “마리아의 일(=잉태한 사실)을 세상에 드러내고 싶지 않았으므로 남모르게 파혼하기로 작정했다.” (1,19) 는 사실로도 입증됩니다. 더욱 꿈에 천사의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라. 그 몸에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1,20) 라는 말을 듣고 이를 신앙으로 받아들여 순명한 사실로도 드러납니다. “아브라함이 모든 믿는 이들의 조상이었듯이” (4,16) 요셉 성인도 모든 믿는 이들의 참된 믿음과 순명의 본보기입니다. 믿음은 들음으로부터 시작하여 순명으로 완성되는데, 바로 성 요셉은 들을 귀를 가진 분이셨습니다. 요셉 성인은 단지 듣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들음을 순명의 삶으로서 응답하신 분이셨습니다. 요셉 성인은 자기의 뜻 보다 하느님의 뜻을, 자신의 안위보다 자신의 보호와 배려에 맡겨진 마리아와 예수님의 안위와 행복을 먼저 고려해서 희생하고 헌신하며 자신에게 맡겨진 역할에 최선을 다해 생을 마치신 성가정의 배경과도 같은 존재이셨습니다. 자신을 드러내기보다 마리아와 예수님의 그림자로 은둔의 존재와 겸손한 삶을 사시면서 기꺼이 한 생을 하느님께 봉헌하신 요셉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언어로써가 아니라 자신의 존재와 삶을 통해 말씀하고 계십니다. 

오늘 마리아의 배필 성 요셉 대축일을 맞아 침묵하며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아버지에게 위로와 희망을 전해 주고 싶은 마음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요셉의 의로움과 그의 소리 없는 침묵을 생각해 봅니다. 요셉의 의로움에서 나온 긍정적인 소리 없는 침묵은 그의 전 생애의 음율(音律)이었다고 느껴집니다. 사랑하는 여인과의 혼인을 앞둔 꿈 많은 청년에게 닥친 약혼자의 임신 소식 앞에 그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책은 오직 약혼자에 대한 배려와 호의에서 모든 일은 가슴에 묻고 침묵하는 길밖에 없었을지 모릅니다. 18세기 프랑스 사제였던 ‘죠세프 디누아르’는 「침묵의 기술」에서 『 지켜야 할 비밀이 있을 때에는 아무리 입을 닫고 있어도 지나치지 않다. 아는 것을 말하기보다는 모르는 것에 대해 입을 닫을 줄 아는 것이 더 큰 장점이며 미덕이다. 』라는 표현에서도 드러나듯이 요셉은 침묵의 성인이었습니다. 
물론 요셉과 마리아의 침묵의 무게는 분명 인간적이고 신앙적이라는 점에 있어서 차이가 있었습니다. 즉 마리아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잉태했기에 약혼자인 요셉을 이해시킬 수 없었기에 신앙으로 침묵했다면, 요셉은 이런 사실을 알 수도 없었기에 약혼자인 마리아를 배려하는 마음에서 인간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의로움에서 침묵했습니다. 어쩜 그러기에 천사가 요셉에게 “두려워하지 말라.” (1,20) 는 위로에서 요셉의 마음 상태가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요셉의 이런 심정은 하느님과 배우자에 대한 사랑의 어리석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기에 요셉 성인은 생애 동안 소리 없는 침묵 가운데서 자신에게 주어진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이면서 성가족의 배경이 되고 바람막이가 되었으며 그림자 역할로 만족하며 하느님을 섬기며 살았습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요셉은 성가정의 든든한 나무처럼 살았는데, 본디 ‘나무란 내〔我〕가 없다〔無〕’는 뜻이라고 합니다. 요셉이 있었기에 성가정을 이룰 수 있었으며 그는 침묵의 성인이자 겸손과 배려의 성인이십니다. 우리 모두 착하고 성실한 하느님의 종 요셉을 본받도록 노력합시다. “성 요셉,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오늘 요셉 축일을 맞는 모든 형제와 자매들에게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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