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김준수 아오스딩 신부님의 묵상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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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내 말 안에 머무르면 참으로 나의 제자가 된다. 그러면 너희가 진리를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8,31.32)

예수님은 이 땅을 떠나시기 전, “아버지, 제가 세상에 속하지 않은 것처럼 이들도 세상에 속하지 않습니다. 이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해 주십시오. 아버지의 말씀이 진리입니다.” (요17,16~17) 라고 제자들을 위해 기도 하셨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아버지에게서 보고 들은 진리를 이야기해 준 자신을 세상은 죽이려고 한다, (8,38.40참조)고 말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이란 세상, 곧 거짓과 오류에 속하지 않고 아버지로부터 파견된 진리의 말씀이신 예수님께 속한 제자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는 아버지 하느님의 말씀이 진리임을 깨닫게 되고, 아버지의 말씀이신 예수님 안에서 참 자유를 누리는 존재들입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집에 머무시며 진리이신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전하신 분이시기에 그분이 우리를 자유롭게 하면 우리는 정녕 자유롭게 될 것입니다. (8,35~36참조) 그런데 우리는 진리이며 말씀이신 예수님 안에서 참 자유를 누리는 하느님의 자녀입니까?

어쩌면 진리이신 하느님을 만나고 체험할 때, 외적인 배척과 박해 등이 아무리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진리를 저버릴 수는 없습니다. 이를 증명해 주는 진리의 사람들 그리고 그 진리 안에서 한없이 자유로운 영혼들을 오늘 독서 다니엘에서 만납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 느고’는 네부카드네자르 임금이 ‘금상에 절하라.’고 명령하지만 이를 거부하자 불가마에 던져집니다. 하지만 그들은 이에 굴하지 않고 불가마 속에서도 하느님을 찬미하며 더욱 천사가 그 세 사람과 함께 거니는 모습을 보고 네부카드네자르는 마침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 느고의 하느님께서는 찬미 받으소서. 그분께서는 당신의 천사를 보내시어, 자기들의 하느님을 신뢰하여 몸을 바치면서까지 임금의 명령을 어기고, 자기들의 하느님 말고는 다른 어떠한 신도 섬기거나 절하지 않은 당신의 종들을 구해 내셨다.” (3,95) 하고 고백하게 됩니다. 불가마에 던져지는 고문과 고초를 겪었지만, 꿋꿋이 진리이신 하느님만을 섬기는 영적 자유를 몸으로 보여준 분들입니다.  
 
오늘 다니엘 예언서의 세 젊은이 곧 사드락, 메삭, 아벳 느고는 그들 나름대로 진리를 깨달았기에 그 진리로 인해 임금의 압박과 회유에도 불구하고 임금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신들이 믿고 있는 ‘하느님만을 섬기겠다.’라고 고백하고, 기꺼이 죽음의 불가마에 사지가 묶인 채 던져집니다. 그런데 그들이 “주님께서는 타오르는 불가마와 임금님의 손에서 저희를 구해 내실 것입니다.” (3,17) 라고, 간절히 믿었던 그대로 불가마 위에서 주님을 찬양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들은 참으로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은 자유로운 영혼들이었음을 증명해 보입니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믿는 유대인들에게 “너희가 내 말 안에 머무르면 참으로 나의 제자가 된다. 그러면 너희가 진리를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8,31.32)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예수님께서 내 말 안에 머무르면 이라는 의미는 단지 말씀을 듣고 이해하는 것보다 인격적인 차원에서 말씀이신 그분의 인격과 존재와 친밀한 일치와 합일을 이룰 때 비로소 참된 제자가 되고, 그분의 사람이 되리라는 것입니다. 이런 스승과 참된 제자 간의 인격적인 관계를 맺고 살아가노라면, 진리이신 하느님의 말씀과 진리이신 하느님을 온전히 만나게 됩니다. 더 나아가서 진리이신 하느님께 몰입하고 투신할 때, 비로소 땅에 속한 모든 에고로 인한 거짓과 오류에서 깨어나 참 자유를 누릴 것이다, 고 말씀하신 것으로 저는 알아듣습니다. ‘진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오랜 과거로부터 오늘날까지 수많은 신학자, 철학자, 과학자들이 진리를 찾기 위해 힘을 쏟았지만, 공통된 답을 찾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요한 14, 6절에서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라 는 말씀에서 진리란, 아리스토텔레스가 「형이상학」에서 말한 ‘사실적 진리 곧 존재물의 진리’가 아니라 인간의 언어와 행위가 마땅히 따라야 할 ‘삶의 길 道’에 대한 종교적 진리입니다. 삶의 진리 혹 종교적 진리가 실현되는 가운데서만 자기 삶의 의미와 가치를 구현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와 아버지의 말씀이 진리이며, 그 말씀이신 예수님 또한 진리이며 그분의 제자가 될 때 우리는 충만한 생명으로 넘쳐나며, 이 진리와 생명이 바로 우리의 자유의 힘이며 원천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스스로 오신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세상에 보내셨기에 오셨습니다. (8,42참조) 파견되신 까닭이란 바로 세상의 모든 사람이 길이신 당신을 통하여 진리이신 아버지를 만나서 진리를 깨닫고 충만한 생명을 누리며 살아감으로써 그 어떤 것에도 억매이지 않는 참 자유를 누리게 하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그리스도님, 찬미 받으소서.” (사순시기 복음환호성 후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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