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김준수 아오스딩 신부님의 묵상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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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여자를 그냥 놔두어라. 그리하여 내 장례 날을 위하여 이 기름을 간직하게 하여라.” (12,7)
     
예전 어느 잡지의 신간을 소개하는 코너에서, 「환대받을 권리와 환대할 용기」라는 책 제목이 신선해서 기억하게 되었는데, 책 저자가 ‘이라영’ 이더군요. 그녀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혁명이나 미움받을 용기가 아니라 사람 대접받지 못한 사람들의 사람 될 권리를 회복하려는 의도에서 ‘환대받을 권리와 환대할 용기’라는 책을 집필했다고 하네요. 저의 관심사는 책의 내용이 아니라 책 제목이 가져다주는 영감입니다.

“그는 부러진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리라. 그는 성실하게 공정을 펴리라. 어둠 속에 앉아 있는 이들을 감방에서 풀어 주기 위함이다.” (이42,3.6) 예수님께서 죽은 라자로를 살리신 것은 그 가족과의 친밀하고 돈독한 관계에서 그들의 슬픔과 고통을 함께 나누려는 자비와 사랑의 행위였습니다. 무슨 칭찬이나 대접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단지 사랑하는 마음의 발로였습니다. 그래서 그 가족들은 다시 살아난 것에 감사하면서 기쁨과 환희에 넘친 잔치를 베풀었던 것입니다. 기쁨으로 넘친 잔치 가운데 특히 마리아가 비싼 순 나르드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붓는 것은 비싼 향유보다 더 귀하고 귀하신 주님께 대한 사랑의 표현이자 환대의 표시였던 것입니다. 그녀가 자기 머리카락으로 예수님의 발을 닦음은 그들 가족의 생명의 ‘빛이요 구원이신’ (시27,1참조) 예수님께 대한 애절한 감사와 報恩의 의미를 품고 있다고 봅니다. 어쩌면 예수님은 충분히 ‘환대받을 권리’가 있으며, 마리아는 소극적이고 방어적인 ‘미움받을 용기’를 감내하려는 의도보다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환대할 용기’를 지닌 여성임이 드러납니다. 

아니나 다를까 제자들 가운데 유다가 “어찌하여 저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지 않는가?”(12,5)하고 빈정댑니다. 어쩜 “온 집안에 향유 냄새가 가득하였다.” (12,3) 는 표현은 단지 나르드 향유 냄새라기보다는 마리아의 주님께 대한 사랑의 마음 씀씀이와 영혼의 향기였을 것입니다. 이에 반해 유다에게서는 돈 썩는 냄새와 함께 썩어가는 영혼의 냄새가 풍겼지 않았을까 상상해 봅니다. 만일 여러분이 그 자리에 있었다면 어떤 냄새를 맡았을 것 같습니까? 예수님께서 평소와 달리 “이 여자를 그냥 놔두어라. 그리하여 내 장례 날을 위하여 이 기름을 간직하게 하여라.” (12,7) 하고 옹호합니다. 어떤 누구도 예수님의 장례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자신의 관심사에만 집중하고 연연했으나, 오직 한 사람 마리아만이 그날을 알고 예수님의 장례를 미리 준비했다고 하니 가슴이 미어집니다. 만일 사랑하는 부모나 자녀가 엿새 후에 죽는다는 것을 감지했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때론 우리에게도 사랑의 거룩한 낭비도 필요합니다.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아낌없이 내주는 것 곧 사랑의 낭비임을 마리아는 알고 실천한 것입니다. 사실 라자로를 다시 살리신 일로 믿는 사람이 늘어났고 적대자들이 호시탐탐 노리던 그날이 이미 임박했음을 감지한 예수님은 마리아의 행위를 바로 당신의 장례를 준비하는 것으로 받아들이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사실 가난한 이들은 늘 너희 곁에 있지만, 나는 늘 너희 곁에 있지 않을 것이다.” (12,8) 하고 그 의미를 부여하신 것입니다. 성주간 동안, 또 사랑의 분별 차원에서 지금 우리의 사랑을 먼저 우선해서 받아야 할 분은 예수님입니다. 살아있는 사람은 다음에 사랑하면 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말을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하는 것은, 예수님의 의도를 곡해하는 것이며, 이를 빙자해서 이웃을 돌보는 일을 미루어서는 아니 됩니다. 
                       “주님, 비싼 나르드 향유를 당신 발에 붓지는 못하지만, 당신의 장례를 애통해하고 슬퍼하는 저희 마음을 받아 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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