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한국 교회의 수호자이신 원죄 없이 잉태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입니다. 오늘 우리 모두의 어머니이신 성모 마리아의 원죄 없이 잉태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성모님은 바로 모든 인간의 어제(=원죄 없이 잉태되심)의 모습이자 내일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할 (=성모 승천) 모델이며 본보기입니다. 성모님은 지금은 잃어버린 본래의 인간 그리고 내일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하고 누릴 상태를 앞당겨 비추어 줍니다. 그렇게 본래 면목을 회복하고 되어야 할 모습이 될 수 있도록 지금이라는 현재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가를 비춰 보여주시는 분이 바로 어머니 마리아이십니다. 이보다 더 완전하고 투명한 거울이 없습니다. 1854년 비오 9세 교종께서 회칙 <형언할 수 없으신 하느님>을 통하여 <성모 마리아의 무죄한 잉태>를 <믿을 교리>로 선포하셨습니다. <복되신 동정녀 마리아께서는 잉태되신 첫 순간부터 인류의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와 전능하신 하느님의 유일무이한 은총의 특전으로 말미암아 원죄에 물들지 않고 보존되셨다.>(DS 2803)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니까 악마의 유혹에 굴복했던 첫 인간 아담과 하와는 인간 본연의 순수성을 손상하였으며 오염되었습니다. 반대로 마리아는 악마를 통해서도, 세속을 통해서도, 자기 자신을 통해서도 결코 유혹에 넘어가지 않았고 그녀의 순수성도 잃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성모를 원죄 없이 잉태되신 분(=무염시태)이라고 선언할 때 말하는 의미입니다. 즉 성모님은 우리의 과거의 모습, 인간 본래의 모습을 잃지 않고 온전히 보존하신 분이시며, 성모를 통해서 하느님은 우리 모두를 무죄함에로 초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모님과 같은 아주 특별한 은총을 잉태되는 순간 누리지 못하지만 우리는 세례를 통해서 그리고 성사 생활을 충실히 살아갈 때 우리 또한 흠 없는 영혼으로 주님 앞에 설 수 있다는 희망에 찬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 물론 성경은 마리아께서 원죄 없이 잉태되셨음을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있지 않습니다. 다만 교부들은 그리스도를 이해하고 선포하는데 도움을 주는 마리아의 탁월한 신앙과 성덕을 인식하였습니다. 유스티노 성인은 하와의 불순명과 마리아의 순명을 대조하면서 마리아의 순명과 신앙이 이루어 낸 구원 업적을 인식하였으며, 이레네오 성인은 이러한 입장을 받아들여 마리아를 그리스도의 구원의 협력자로 찬양하였습니다. 오리게네스 교부는 제자들이 모두 도망친 것에 비해 십자가 곁에 남아 계셨던 마리아에게서 신앙의 용기를 보았으며, 마리아의 노래(=성모의 노래)에서 드러난 겸손, 가난, 신앙의 충만함, 영적 인식, 하느님의 신비적 계시를 현명하게 받아들이는 자세 등의 덕을 높이 평가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원죄 없으신 잉태교리를 확인하듯 루르드의 성모 발현이 1858년 일어났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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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김준수 아오스딩 신부님의 묵상글입니다.
2021.12.07 18:54
원죄 없이 잉태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 루카 1, 26 -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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