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김준수 아오스딩 신부님의 묵상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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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를 규정한 철학자들의 요점을 요약하자면, 무릇 인간은 자신에게 주어진 자유의지를 가지고 어떤 그 무엇을 할 것인지 하지 아니할 것인지를 선택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자유의지를 근거로 선택한 것을 결단하고 실행할 능력이 가장 인간다움이라고 말했습니다. 그에 반해 예수님을 추종하는 제자의 경우는 선택의 무게 중심이 인간에게 있지 않고 전적으로 예수님께 달려 있다는 점입니다. 예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인간의 자유의지에 따른 선택과 결단보다 하느님의 부르심으로 말미암은 사랑과 은총에 그 비중을 둡니다. 이런 관점에서 오늘 복음을 보면, 인간의 선택이나 제자가 되기 위한 조건을 구비했기에 예수님으로부터 선택된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느님의 자비가 낳은 결과이며 이를 오늘 복음은 가장 극적으로 보여 주고 있습니다. 

우리네 인생살이에는 때론 예기치 않은 때, 전혀 예상하지 않은 방법으로 은총은 다가온다고 저는 믿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어부들은 밤새도록 일한 다음 그물을 씻고 있었으며, 소문을 들은 군중이 예수님께 몰려오자 예수님께서 갑작스레 베드로의 배에 올라타신 것입니다. 이때 자신의 배를 선택하여 타신 예수님을 보고 베드로의 느낌은 어떠했을까 싶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배를 조금 저어나가라고 하신 다음, 배에 앉은 채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가르치기 시작하셨습니다. 참 평온하고 정겨운 광경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가르치신 다음, 베드로에게 <깊은 데로 저어 나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아라.>(루5,4)고 말씀하셨습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놀랄 일이 베드로에게 일어났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무작정 깊은 데로 저어나가서 그물을 치라고 말씀하시지 않는가? 이 무슨 경우인가? 밤새도록 동료들과 그물을 던졌지만 공교롭게도 한 마리도 잡지 못한 이 아침에,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또다시 던지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니 이를 어찌해야 하는가! 이 고장에서 태어났고 이 호수에서 잔뼈가 굵은 베드로는 누구보다도 이 바다와 그물질하기 좋은 시간과 자리를 잘 알고 있는 자신 그리고 밤새도록 그물질로 피곤할 뿐만 아니라 마음도 편치 않은 상태인데 웬 그물질!!! 그러기에 베드로의 <스승님, 저희가 밤새도록 애썼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하였습니다.>(5,5)라는 표현 속에 베드로의 심정이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 역시도 경륜, 경험과 지식이 곧 자산이라고 할 만큼 베드로 역시도 자신의 커리어(career)에 대한 남다른 자부심이 대단했으리라 봅니다. 더욱 밤새도록 애썼는데도 다른 밤과 달리 이상할 만큼 그날은 한 마리도 잡지 못한 허탈감, 실망감으로 베드로의 몸도 마음도 지쳐있었던 것입니다. 이 상황을 표현하는 말, <애썼다.>라는 단어는 <나는 수고를 무척 많이 하였다. 할 수 있는 데까지 다 해 보았고 그로 인해 나는 지칠 대로 지쳤다. 그럼에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합니다. 

결국 <애썼다.>라는 표현은 우리네 인생살이에서 겪는 피로감, 불신감, 허탈감, 자포자기의 심정을 가장 잘 드러내는 단어라는 것입니다. 애써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결실이나 결과가 보이지 않을 때, 자신에 대한 실망의 순간에 이렇게 주님께서 우리를 찾아오시어 우리에게 도전하시고 새로운 길로 초대하십니다. 이 순간 베드로는 예수님께 <지금 바다에 다시 나가 그물질을 하는 것은 다 부질없고 소용없는 짓이니 저는 그만 집으로 가렵니다.>고 거부하고 돌아섰다면, 그는 평생토록 그 바다에서 어부로 끝날 인생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우리네 인생살이에도 삶을 바꿀 기회가 누구에게나 찾아오지만, 찾아온 그 기회를 붙잡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나 봅니다. ‘이게 뭐지.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힘. 나의 판단으로 아니올시다. 그럼에도 이분의 말씀을 거역할 수 없는 어떤 그 힘을, 생명을 느껴지니 어찌해야 하나. 마침내 베드로는 피로감이나 부담감을 떨쳐버리고 <스승님의 말씀대로 제가 그물을 내리겠습니다.>라고 응답함으로써 자신의 아집이나 자존심, 경험과 지식에 연연하지 않고, 그것을 뛰어넘어 새로운 삶의 선택과 결단을 향해 나가는 용기 있는 사람으로, 무엇보다도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인간으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우리 역시 실망과 허탈 그리고 인생의 피곤함으로 힘들 때 베드로처럼 <스승님, 당신이 말씀하시니 제가 그물을 치겠습니다. 당신의 말씀에 의지하여, 당신의 은총을 믿고서.....>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마침내 전혀 예상하지 않았던 일, 곧 밤새도록 그 바다에서 그물을 던졌던 그들에게 자신들의 노력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배가 가라앉을 정도로 많은 고기를 잡게 되니 그때야 비로소 베드로는 자신의 배에 올라타시고 배를 저어나가 그물을 던지라고 말씀 그분 앞에 무릎을 꿇고, <주님, 저에게서 떠나 주십시오. 저는 죄 많은 사람입니다.>(루5,8)라고 고백합니다. 이 베드로의 말과 행위는 스승이라고 불렀던 베드로가 인생의 주인이시며 주님이신 예수님을 향한 전적인 신뢰를 바탕으로 한 승복이며 의탁이라고 봅니다. 이는 곧 사람들에게 드러난 하느님의 권능은 상대적으로 인간의 죄를 극명하게 드러나게 하고, 하느님의 거룩하심 앞에 서면 상대적으로 자신이 살아왔던 삶이 얼룩져 보이고 비뚤어져 보이고 더 뚜렷하게 느끼리라 봅니다. 그러니까 베드로가 고백한, <전 죄 많은 죄인입니다.>(5,8)는 고백은 베드로가 상대적으로 타인보다 <죄가 많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만큼 베드로는 하느님의 자비를, 仁慈를 더 많이 느끼고 깨달았다는 표현인 게지요. 하느님의 자비의 거울 앞에 적나라하게 서 있는 베드로는 그러기에 자신이 보잘것없는 존재임을 절감하면서 예수님의 대자대비하심을 체험했고, 그래서 그는 자신의 동료들과 함께 <두려워하지 마라. 이제부터 너는 사람을 낚을 것이다.>(5,10)는 스승의 말씀에 힘입어 그분께 귀의하며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던>(5, 11)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 역시 하느님의 은총을 체험했기에,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사실 나는 사도들 가운데 가장 보잘것없는 자로서, 사도라 불릴 자격조차 없는 몸입니다. 하느님의 교회를 박해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은총으로 지금의 내가 되었습니다. 하느님께서 나에게 베푸신 은총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들 가운데 누구보다도 애를 많이 썼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아니라 나와 함께 있는 하느님의 은총이 한 것입니다.>(1코15,9~10)

이처럼 첫 제자들로부터 비롯하여 예수님을 따랐던 사람들은 자신들이 만난 예수님 안에서 하느님의 자비와 호의를 체험하였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역시 하느님의 자비를 체험할 때 비로써 온전히 회개하고 온전히 예수님을 따를 수 있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하느님의 자비를 체험하지 못하고 자비에 사로잡히지 못하면 우리는 온전히 예수님과 예수님의 가르침에 투신할 수 없다는 사실이기에 오늘의 복음은 우리에게 근본적이고 근원적인 물음을 던집니다. “당신은 왜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까?” 그에 대한 우리의 고백은, “주님 저는 죄 많은 사람입니다. 하오나 당신은 저의 죄를 묻지 않으시고 저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 주셨습니다. 제가 살아가는 힘은 바로 당신 사랑이며 자비입니다. 언제나 당신 말씀에 의지하고 당신 은총에 신뢰하며 제가 저 자신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제 내면의 바다에 은총의 그물을 내리게 하여 주십시오. 저는 주님께 의지합니다. 저는 주님의 말씀에 의지합니다. 저는 주님의 은총과 사랑에 의지합니다.”라고 고백해야만 합니다. <주님이 말씀하신다.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리라!>(복음 환호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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