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김준수 아오스딩 신부님의 묵상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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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님께서는 갖가지 질병을 앓는 많은 사람을 고쳐 주셨다.” (1,34)

요즘은 여러 과일도 그렇지만 채소도 이젠 시도 때도 없이 시절時節을 앞서갑니다. 그로 인해 좋은 점도 있습니다. 요즘 같은 때가 되면, 저는 묵고 삭은 김장 김치보다 봄동 겉절이를 더 좋아하기에, 봄동 겉절이가 나오는 날은 제 눈과 혀가 분주합니다. 그리고 마음 또한 호사를 누립니다. 그런데 이 봄동에 관해서 어느 스님이 참 맛깔스럽게 표현했더군요. 그 스님은 산사에 살면서 저처럼 봄동을 좋아하셨나 봅니다. 다들 잘 아시는 것처럼 봄동은 늦게 파종한 배추로, 보통 배추와 달리 속을 채우지 못하고 겉모양이나 맛도 배추와 다르기에, 봄동은 배추이면서도 배추가 아닌 불이不二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표현했더군요. 또한 그 이름부터 역설과 반전이 있습니다. 봄동에서 봄은 순수한 우리말이고, 冬은 한자어로 겨울입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표현입니까? 이 짧은 단어 안에 다름을 아울러 품고 있으며, 서로를 거두어 주기에 오고 감이 함께 어우러진 채소의 이름이 아닌가 싶습니다. 어쩌면 자연이나 세상의 이치가 봄동 안에 내포되어 있지 않나요?
 
아마도 오늘 복음도 이런 관점에서 보면, 예수님의 ‘숨음과 드러남’, ‘은둔과 노출’이 절묘하게 표현된 예수님의 가파르나움에서 일상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활동을 통해 기도로 은둔하고 숨으시며, 기도를 통해 활동으로 노출하고 드러내면서 끊임없이 다름이 조화로운 삶을 통해 자신이 누구이며, 자신이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를 예수님은 본을 보여 주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의 일상을 무비카메라로 담은 듯 그 흐름이 참으로 자연스럽고 담백하게 진솔하게 드러나 있습니다. 먼저 주님은 카파르나움 회당에서 새로운 가르침을 전수하신 뒤, 베드로와 안드레아 집으로 돌아오시어 쉬려고 하셨나 봅니다. 하지만 열병을 앓고 있는 베드로 장모의 열병을 먼저 낫게 해 주어야 했으며, 치유 받은 그녀의 도움으로 늦게 음식을 잡수실 수 있었습니다. 이게 삶인지 모릅니다. 도움을 주고 도움을 받으면서 살아가는 게 우리네 삶입니다. 저녁에는 다시 몰려온 여러 가지 질병으로 고생하고 있는 이들을 치유해 주고 마귀 들려 힘겨워하는 이들 역시 마귀를 쫓아내 주셨습니다. 어쩌면 온종일 예수님은 사람들과 함께 머물면서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 주시기 위해 말씀으로 가르치시고 치유해 주셨습니다. 사실 사람들과 어울리고 사람들을 돌보는 일이 얼마나 사람을 몸과 마음으로 지치게 하는지 아십니까? 아무튼 예수님의 가르침과 치유는 사람들을 억누르고 있는 질병과 악령과 죄에서 해방을 위한 구원 활동이었습니다. 그렇게 온종일 일하시느라 심신이 피곤하실 예수님께서는 먼동이 트기 전 이른 새벽에 제자들이 깊은 잠에 빠져 있을 때, 예수님께서는 홀로 외딴곳으로 가셔서 기도하셨다고 복음은 전합니다. (1,35참조)

사실 하느님의 이름으로 사도직 활동에 전념하는 성직자-수도자들이 흔히 쉽게 놓쳐버릴 수 있는 면이 바로 기도 생활입니다. 「쇄신의 문제」라는 문서에서, 『사도적 활동과 복지 활동이 수도 생활의 본질에 속하는 사도적 활동 수도회에 있어서도, 이 활동은 수도 생활의 첫째 목적이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할 것이다.』라고 천명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바쁜 사도직으로 인해, 쉽게 활동이란 미명으로 기도를 소홀히 하고, 기도를 방치하는 불균형을 낳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의 오늘 복음에 나타난 모습은 교회 안에 복음 선포를 실천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으며 도전하고 있습니다. 흔히 수도자에게 중요한 것은 ‘수도자란 무엇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어떤 존재인가가 더 중요하다. Doing 이전에 Being이 우선해야 한다.’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아니 되는 것입니다. 봄동처럼 활동과 기도는 함께 어울림 곧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기도 없이 무엇을 말하고 보여 줄 수 있겠으며, 더더욱 선포자의 말에 무슨 권위가 있겠으며 새로운 가르침이 나오겠습니까? 사실 예수님의 활동과 기도의 긴장 속에서 조화를 이루는 모습은 복음 시작 부분부터 마지막 부분까지 지속된다는 사실을 기억합시다. 이것이 예수님의 일상이었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과 치유에 대한 소문이 퍼져나가자, 아침부터 어제보다 더 많은 사람이 시몬 베드로의 집으로 몰려들었습니다. 그리고 몰려든 사람들은 거두절미하고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어디 계시냐, 고 아우성칩니다. 그때야 제자들은 예수님의 모습이 보이지 않음을 확인하고서, 모두 다 여기저기 들쑤시면서 찾아다녔나 봅니다. 그래서 그분을 보자마자 대뜸, 제자들은 “모두 스승님을 찾고 있습니다.”(1,37)라고 말씀드리는데, 그 어감은 제자들이 무척 고무되고 흥분된 마음 상태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런 제자들의 보고를 들으신 예수님의 태도는 제자들과 달리 담대하게,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다른 이웃 고을들을 찾아가자. 그곳에도 내가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려고 떠나온 것이다.” (1,38) 왜 이리도 급하게 서둘러 그 마을로 들어가시지 않고 홀연히 다른 마을로 발길을 돌리시어 떠나셨을까요? 물론 세상 끝까지 복음을 선포해야 하겠지만 다른 관점에서 보면 예수님은 이미 그 마을 사람들이 자신에게 무엇을 요구할지 알고 계셨기에, 인간적인 인기나 영광에 미련을 두지 않고 떠나셨다고 봅니다. 이미 나자렛 고향 사람들과 비슷한 그들의 의향을 꿰뚫으셨던 것입니다. 사실 주님은 아버지의 사랑과 하느님 나라의 통치를 알려주고 보여 주고자 노력하였지만, 그들은 단지 외적인 표징만을 보았을 뿐 표징 너머에 있는 더 거룩한 하느님의 사랑과 현존을 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아무 미련 없이 기꺼이 모든 것을 접고 마무리해서 홀연히 다른 마을로 길을 잡으시고 떠나셨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일상은 드러남과 감춤, 은둔과 노출, 기도와 활동을 아우르시는 분으로 드러납니다. 이는 자신의 존재 이유와 파견에 충실하신 분이셨기에 존재에서부터 그토록 아름답고 열정적인 활동을 하실 수 있었다고 느낍니다. “다른 이웃 고을들을 찾아가자.” (1,38) 참으로 아름답지 않나요. ‘아,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자유롭게 떠날 수 있는 영혼의 아름다운 뒷모습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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