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김준수 아오스딩 신부님의 묵상글입니다.
조회 수 92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마르타와 마리아 그리고 오빠인 라자로의 베타니아 집은 예수님에게는 무척이나 사람 냄새가 나는 곳으로, 어느 때 방문하더라도 환대와 대접을 받을 수 있는 편안한 장소이었을 것입니다. 때론 하느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편안히 환대해 주는 가족과 집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 가족들과 친밀하고 친근한 관계를 맺어왔고 서로 스스럼없는 사이였다고 느낍니다. 기쁨은 물론 슬픔까지도 함께 나눌 수 있는 정과 사랑으로 연결된 관계를 지속해 왔던 것입니다. 그런 사이였기에 오빠 라자로가 중병을 앓게 되자 마르타와 마리아 자매는 이내 예수님께 사람을 보내어 “주님,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이가 병을 앓고 있습니다.”(11,3)고 소식을 전해주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런데 이 소식을 전해 들은 예수님께서 머물던 곳에서 이틀을 더 보내시며, 다만 “라자로의 병은 죽을병이 아니라 오히려 하느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다. 라자로의 그 병으로 말미암아 하느님의 아들이 영광스럽게 될 것이다.”(11.4)는 이해할 수 없는 말씀을 하십니다. 지난 주일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태생 소경은 누구의 죄 때문이 아니라 ‘하느님의 일이 저 사람에게서 드러나려고 그리된 것이다.’고 말씀하셨던 또 다른 울림입니다. (요9,3 참조) 더욱이 예수님께서 “우리의 친구 라자로가 잠들었다. 내가 가서 그를 깨우겠다.”(11,11)고 하시자 제자들은 라자로가 그냥 잠을 잔다고 오해하여 예수님께 “주님, 그가 잠들었다면 곧 일어나겠지요.”(11,12)라고 엉뚱한 말을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분명히 ‘라자로는 죽었다.’고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왜 예수님은 마르타와 마리아의 슬픈 마음을 헤아리셔서 그리고 ‘사랑하는 벗’인 라자로의 중병의 소식을 듣자마자 베타니아로 달려가시지 않았을까요. 경험적으로 ‘한恨은 한으로 치유’할 수 있듯이, ‘죽음은 죽음으로만 치유’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어설픈 상태는 오히려 상태를 더 악화할 수 있기에 밑바닥까지 내려갈 때만이 그 상처로부터 바닥을 치고 오를 수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죽음도 온전히 죽을 때만이 참으로 새로운 생명으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주님은 그들 가족을 사랑하시지 않았기에 지체하고 머뭇거린 것이 아니라 오히려 참으로 사랑했기에 그 자매들의 슬픔과 아픔을 알면서도, 라자로가 죽음의 문턱을 온전히 넘어서야 만이 라자로를 죽음에서 생명으로 이끌 수 있고 이 일을 통해서 아버지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슬픔으로 조급하거나 성급하게 처신하지 않고, 주님의 때 곧 영광의 때를 기다리는 마음입니다. 사랑했기에 사랑하는 이들의 슬픔을 알면서도 차마 하느님 구원의 때를 앞당기지 못하고 기다려야 하는 아픔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런 답답한 마음으로 이틀 뒤에야 베타니아에 도착하신 예수님을 맞이한 마르타와 마리아의 심정을 잘 드러내는 순간은 바로 “주님, 주님께서 여기에 계셨더라면 제 오빠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11,21. 32)라는 안타깝고 아쉬운 심정의 표현입니다. 어찌 그 말의 의미를 주님께서 모르시겠습니까? 그런 마르타를 위로하며 그리고 당신이 이제부터 하려는 의도를 넌지시 드러내시며 “네 오빠는 다시 살아날 것이다.”(11,23)고 말씀하시지만, 마르타는 온전히 주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이에 마르타는 “마지막 날 부활 때에 오빠도 다시 살아나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고 대답하자, 예수님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11,25~26)고 밝히십니다. 이 말씀은 라자로의 죽음과 그를 다시 살리심을 통해서 주님께서 마르타와 마리아 그리고 모든 사랑하는 가족을 잃었던 사람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예수님의 참 위로와 구원의 기쁜 선포입니다. 그러기에 현재도 베타니아의 마르타의 집(=작은 경당)에는 이 말씀이 새겨져 있고 그 집을 방문한 모든 사람에게 예수님께서 마르타에게 물었던 것처럼 ‘너는 이것을 믿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또한 사랑하는 마리아와 그곳에 와 있던 사람들의 우는 모습을 보신 예수님께서는 마음이 북받치고 산란해지셔서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아마도 예수님은 이 땅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비참한 죽음을 보시고 그렇게 울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에제키엘 예언자는 주 하느님께서 “무덤을 열어 나의 백성을 무덤에서 끌어내어 이스라엘 땅으로 데려가겠다.”(37,12)는 말씀을 전합니다. 이제 이 말씀을 실현하듯이 예수님께서는 슬픔과 애통한 마음으로 북받치신 상태에서 라자로의 무덤에 다가가시어 무덤을 가로막은 “돌을 치워라.”(11,39)고 말씀하신 다음, 큰 소리로 “라자로야, 이리 나와라.”(11,43)고 외치십니다. ‘라자로’는 본래 <무력하다.>는 의미이며 이로써 죽음 앞에 모든 인간은 <무력한 존재>라는 속뜻을 내포하고 있기에 예수님께서 단지 ‘라자로’만을 무덤에서 불러내신 것이 아니라 죽음 앞에 너무도 나약하고 힘없는 모든 인간 존재를 어둠에서 빛으로, 죽음에서 생명으로 불러내신 것입니다. 이를 위해 예수님께서는 라자로와 그의 여동생들을 누구보다 사랑했음에도, 선뜻 베타니아로 올라가지 못하고 지체하신 것입니다. 라자로를 무덤에서 끌어내어 생명으로 다시 불러내신 주님은 사람들에게 이제 죽음에서 풀려 난 “라자로를 감싸고 있던 수건을 풀어주어 걸어가게 하여라.”(11,44)고 말씀하십니다. 

무덤은 분명 삶의 마지막 자리이며 어두운 절망의 장소이지만, 이 삶의 마지막 자리가 영원한 생명을 위한 시작의 자리이며, 어둠의 절박함 속에서 빛을 향한 희망이 시작하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이제 죽음으로 썩어 문드러진 냄새가 진동한 죽은 육신이 영으로 다시 살아날 때 향기로 가득 찰 것입니다. 혹여 우리에게서 죽음의 썩는 냄새가 난다면 무덤을 가로막았던 돌을 치웠듯이 마음을 가로막는 돌을 치워 성령께서 활동할 수 있도록 우리 영혼을 비우도록 합시다. 『그리스도께서는 저희와 똑같은 사람으로서, 친구 라자로의 죽음을 슬퍼하며 우시고, 영원하신 하느님으로서 라자로를 무덤에서 불러내셨으며, 인류를 자비로이 굽어보시고, 거룩한 신비를 통하여 새 생명으로 이끌어 주셨나이다.』(감사송)


  1. 연중 제28주일: 마태오 22, 1 - 14

    Date2023.10.14 By이보나 Views48
    Read More
  2. 연중 제27주일: 마태오 21, 33 - 41

    Date2023.10.07 By이보나 Views45
    Read More
  3. 연중 제26주일: 마태오 21, 28 - 32

    Date2023.09.30 By이보나 Views56
    Read More
  4. 연중 제25주일 : 마태오 20, 1 – 16

    Date2023.09.23 By이보나 Views56
    Read More
  5.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

    Date2023.09.17 By이보나 Views84
    Read More
  6. 연중 제24주일: 마태오 18, 21 - 35

    Date2023.09.17 By이보나 Views47
    Read More
  7. 연중 제23주일: 마태오 18, 15 - 20

    Date2023.09.09 By이보나 Views75
    Read More
  8. 연중 제22주일: 마태오 16, 21 – 27

    Date2023.09.03 By이보나 Views68
    Read More
  9. 김준수 신부님 연중 제21주일: 마태오 16, 13 – 20

    Date2023.08.26 By이보나 Views80
    Read More
  10. 연중 제20주일: 마태오 15, 21 – 28

    Date2023.08.19 By이보나 Views65
    Read More
  11. 연중 제19주일: 마태오 14, 22 – 33

    Date2023.08.12 By이보나 Views71
    Read More
  12. 주님의 거룩한 변모 축일: 마태오 17, 1 - 9

    Date2023.08.05 By이보나 Views79
    Read More
  13. 연중 제17주일: 마태오 13, 44 – 52

    Date2023.07.29 By이보나 Views72
    Read More
  14. 연중 제16주일(1): 마태오 13, 24 – 43

    Date2023.07.22 By이보나 Views71
    Read More
  15. 연중 제15주일: 마태오 13, 1 – 23

    Date2023.07.15 By이보나 Views66
    Read More
  16. 연중 제14주일: 마태오 11, 25 – 30

    Date2023.07.08 By이보나 Views75
    Read More
  17. 연중 제13주일: 마태오 10, 37 – 42

    Date2023.07.01 By이보나 Views66
    Read More
  18.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 마태오 18, 19-22

    Date2023.06.24 By이보나 Views85
    Read More
  19. 연중 제11주일: 마태오 9, 36 – 10, 8

    Date2023.06.17 By이보나 Views87
    Read More
  20.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요한 6, 51 - 58

    Date2023.06.10 By이보나 Views104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 3 4 5 6 7 8 9 10 11 12 ... 36 Next
/ 36